죽음으로 명예를 지키고자한 삼별초
죽음으로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삼별초 | ||||||||||||
삼별초의 한이 서린 '붉은 오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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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의 흙이 붉다고 해서 붙여진 ‘붉은 오름’은 고려말기 여.몽 연합군에 항거해 끝까지 항전을 벌였던 삼별초(三別抄)의 마지막 격전장이다. 이에 따라 오름의 흙이 붉게 된 사연도 원나라(몽고)의 내정간섭을 끝까지 거부했던 삼별초와 무관하지 않다. 고려 원종 12년(1271) 진도싸움에서 여.몽연합군에게 패한 삼별초는 제주도에 들어와 2중으로 된 성을 쌓았는데 성 안쪽은 수직에 가깝게 돌로, 성 바깥쪽은 언덕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토성을 쌓았다. 바로 제주시 애월읍 고성리에 있는 항파두리성 이다. 김통정 장군은 지혜와 덕, 용맹성을 두루 갖춘 장수로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당시 원나라(몽고)세조는 개성에 있던 김통정의 일가 친족인 김찬과 이소 등을 비롯해 5명의 지인을 골라 제주로 보내 김통정을 회유하려고 했다. 그러자 김통정은 결사항쟁이라는 자신과 삼별초의 굳은 의지를 원나라 세조에게 전달하기 위해 김찬 만을 살려두고 나머지 4명은 모두 죽여버린다. 그 어떤 협박으로도 김통정을 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원나라는 홍다구에게 군사9천명을 내주어 제주로 내려가 삼별초를 제압하도록 한다. 이에 고려조정도 원나라의 강압으로 김방경에게 군사8백명을 거느리고 원나라군과 연합하도록 한다. 삼별초 공격준비를 마친 여.몽 연합군은 1273년 4월 제주에 상륙하고 곳곳에서 삼별초와 일전을 벌인 끝에 항파두리성 까지 함락시킨다. 당시 성밖에 나가있던 김통정은 항파두리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탈출한 부하들로부터 듣게 되고 울분을 삼키며 최후의 1명까지 항쟁할 것을 다짐한다. 이에 김통정은 부하장수 이문경에게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항파두리성 남동쪽에 있는 오름에 집결해 진을 치도록 한다. 막상 진을 쳤지만 삼별초의 군사는 고작 70여명. 결국 수적열세에 몰린 삼별초는 여.명 연합군에 의해 죽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자며 김통정 장군을 비롯해 군사 모두 자결한다. 나라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으로서 명예를 지키고자 했던 삼별초. 이들에 한이 서린 핏물은 오름에 흙을 붉게 물들였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 오름을 가리켜 ‘붉은 오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