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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에 대하여

세이레 2006. 4. 5. 15:21
연을 가지고 놀 때 한국인은 의젓하였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쳐다보는 자는 노예의 조건을 거부한다.” - 《한국찬가》 (* C.V.게오르규著)

예로부터 ‘연’은 한국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설날이 되면 동네 꼬마들은 모두,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연에 그들의 소원을 실어 하늘 높이 날려보냈다.

어느 정도 연배에 이른 어른들에겐 연날리기 뿐 아니라 연싸움에 대한 기억들도 새로울 것이다. 마을의 모든 연들을 물리치고 마지막 남은 연이 땅에 내려지면, 수많은 군중들은 운동경기에서 승리한 챔피언을 맞이하듯 박수 갈채를 보내곤 했다.

우리 민족이 단합할 수 있는 공간과 소재라면 언제 어디서든 지나친 관심을 보여주었던 일제에 의해 한때 연날리기나 연싸움은 물론, 연의 제조마저 금지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 시절 마디마디 응어리졌던 가슴을 잠시나마 푸른 하늘에 맘껏 풀어놓게 했던 우리의 방패연, 가오리연들은 아직도 이 산천 위를 날고 있다.

연의 유래

우리나라의 연은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것으로 역사적인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에 신라 진덕여왕 원년(서기647년)에 김유신 장군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연을 사용하였으며, “동국세시기”에서는 고려의 명장 최영 장군이(서기1351년) 탐라(현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던 몽고인들의 반란을 정벌할 때 연을 사용하여 성안을 정찰하고 갈대 씨를 뿌린 후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란 후 불을 질러 섬을 점령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충무공전술비연을 제작하여 섬과 섬, 섬과 육지 등을 서로 연락하는 통신수단 및 작전을 지시하는 전술신호와 암호수단으로 사용한 예를 볼 때 우리는 더 한층 우리 겨레의 지혜와 슬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후, 영조대왕 때(1724년)에는 궁안에서 청·홍으로 편을 나누어 연을 날렸으며 동네마다 백성들의 화합을 위해 연날리기를 적극 장려한 바, 농한기 때인 음력 12월부터 연 날리기를 시작하여, 그 절정인 정월 대보름날에 “액막이연”을 날려보냄으로써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연 날리기를 끝으로 농사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리 민족 고유의 연 날리기는, 조선시대 말 일본의 우리 민속문화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금지하였으며, 또한 6.25동란 등으로 인해 연날리기는 우리 민속놀이로서의 명맥이 거의 사라져 갔으나, 자유당 시절 민족정신을 계승하자는 정부의 정책으로 연날리기를 적극 장려하고, 연 관련 기능 보유자들을 수소문하여 광복후(1954년) 처음으로 연날리기 대회를 열릴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연이야기

정월 대보름이 지나면 연을 날리는 사람을 왜 “백정”이라 하였을까?

이 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1724년 영조대왕 당시만 해도 연은 궁 안에서만의 놀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삼정승 육판서들이 모두 모여 친목도모를 위한 연 끊어먹기 시합을 하다가 한 정승의 연이 밭에 떨어졌고 그 연을 밭을 갈던 농부가 발견하게 되었다. 연이란 것은 궁안의 정승들이 날리는 것이였기에 돌려주려고 궁으로 찾아가니, 정승은 “이 연은 나에게 필요치 않으니 자네가 가지고 가서 날리도록 하게나!” 하였다. 그 이유는 연에 오물이 묻어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농부는 신이 나서 집으로 돌아온 즉시, 연에 묻은 오물을 깨끗이 닦고 하늘에 띄어보니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농부는 친구들과 함께 똑같은 연을 만들어 날려보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연 날리기는 정말 신나고 즐거운 놀이여서 모두가 좋아하게 되었고, 마을사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연 날리는 재미에 취하게 되어 농사는 점점 엉망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승이 “아! 큰일일세. 백성들이 농사일은 게을리 하고 연만 날리니 이 일을 어찌할꼬!” 하고 한숨을 내쉬며 걱정하던 끝에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게 되었고, 이에 왕은 정승들과 판서들을 불러모아 이 사실에 대해서 회의를 하게 되었다. 회의 중 한 정승이 “정월 대보름이 지나서 연을 띄우는 자는 ‘백정’이라 칭한다고 하면 어떠하겠습니까!” 라고 말하니, 왕은 “참 좋은 생각이구나!” 하고 기뻐하시며 다음날 바로 방을 붙이도록 이르셨다.

그때 당시만 해도 “백정”이라는 호칭이 붙은 사람은 인간 이하의 천대를 받고 있는 터라 그 방을 붙인 후로는 정월 대보름이후 연날리는 사람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연 날리기는 겨울철에 하는 놀이가 되었으나, 오늘날에는 연에 대한 옛이야기가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소망연(액막이연)

연날리기는 옛날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철 민속놀이의 하나였지만, 지금은 현대놀이 문화의 발달과 컴퓨터 전자오락문화 등으로 쇠퇴해 왔습니다. 옛날에 가장 많이 날리는 때가 바로 설날에서부터 정월대보름까지인데 특히, 보름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자기의 이름과 생년월일시를 써서 하늘 높이 날린 후에 연줄을 끊어 하늘 끝까지 한없이 날아가게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 해에 자기에게 다가올 액운을 연과 함께 날려버려, 아무 탈없이 무병하고 행복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는 아름다운 우리의 풍속으로서 이것을 송액 또는 액막이연이라고 불려졌습니다.

연날리기가 일반인들에게 민속놀이로써 널리 알려진 것은 조선시대 영조임금의 때로, 정월대보름이 되면 전국에서 연날리는 사람들이 한양의 수표교에 모여 전국적인 행사를 하였다 합니다. 이러한 우리 민속놀이가 일제시대 때에 와서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일환 및 6·25 동란을 겪으면서 점점 쇠퇴의 길을 걸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연나라”에서는 이러한 우리 고유 풍속을 이어받아 전국에 보급은 물론, 우리 “소망연” 날리기가 전세계의 건전한 놀이문화로써 알리기 위해 조립식 얼레 및 액막이연이 가능한 하회탈 소망연과 토끼 소망연을 조립식(일명 “동네꼬마”)으로 고안하여, 이번 정월대보름을 맞아 3월 1일(3.1절)에 서울 한강 고수부지에서 제1회 소망연(액막이연) 날리기 행사를 계기로 우리 전통 연을 이해시키고 전국적으로, 전세계에도 보급하여 우리 전통문화 유산의 우수성을 알릴 예정입니다. 우리 어린이들의 많은 격려와 동참을 바라겠습니다.

이 충무공 전술비연

‘이 충무공 전술비연’은 오늘날과 같이 무전기나 무선통신 등이 없었던 400년 전인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데 통신 및 암호 수단으로 사용했던 일종의 신호 연입니다.

“이 충무공 전술비연”은 잘 조화된 색상과 수십가지의 아름다운 문양으로 각각 연마다 훌륭한 이름을 붙여서 사용되었다고 전해 내려왔습니다. 그 당시 사용했던 연들은 연에 그려진 문양에 따라 뜻을 달리하여 사용되었는데 삼봉산 문양의 연(일명, 삼봉산연)을 띄워 날리면 삼봉산에 모이라는 뜻이고, 삼각형을 2층으로 크게 그려넣은 연(기바리연)을 띄우면 왜적과 백병전으로 맞붙어 싸우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청색바탕에 붉은 문양이 그려진 연(청홍외당가리연)이 떠오르면 “동쪽과 남쪽에서 동시 공격하라”는 뜻이고, 고리가 아래로 길게 늘어진 연(긴고리연)이 떠오르면 “태풍이 불때 군선의 줄을 길게 매라”는 뜻이며, 또한 동그란 달 모양을 그려넣은 연(된방구쟁이연)이 뜨면 “달이 뜰 때 공격하라”는 뜻입니다.

우리 “전통 방패연”은 가운데에 방구멍이 있어서 바람이 약하거나 강할 때도 날릴 수 있으며, 하늘을 전후좌우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연으로, 이러한 옛 선조들의 과학적인 연 제작의 발상과 이 충무공의 과학적인 연의 이용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지혜를 다시한번 엿볼 수있게 합니다.

옛 문헌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초기에 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고증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방패연에 여러가지 문양을 그려 넣어 전투명령 전달의 통신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현재 총 55종의 문양과 그 뜻이 전해오고 있는 전술비연은 각각 문양마다 다른 암호를 넣어 작전명령 전달을 위해 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400년 전 통신수단으로 이용된 연에 어떠한 뜻이 담겨져 있는지 연의 문양이 나타내는 명령과 각각의 연의 명칭에 대하여 알아보자.

우리나라 연에 관한 기록을 보면 초기에는 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반란을 평정하기 위하여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나 최영 장군이 연을 이용하여 성을 함락했다는 기록이 문헌에 나타나 있다.

연이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기록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연을 통신수단으로 이용했다는 기록이다. 우리는 이순신 장군 하면 거북선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거북선의 과학적 구조와 견고함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요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북선을 제외하고 임진왜란 때 통신수단으로서 큰 공헌을 한 연의 쓰임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늘날과는 달리 무전기가 없었던 그 옛날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은 연을 직접 제작하여 섬과 섬 사이, 섬과 육지를 연락하는 통신수단으로, 또는 작전지시의 방편으로 이용하였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이 충무공이 작전신호 및 암호용으로 사용했다는 이 충무공 전술 신호연은 수십가지에 달하는 연의 문양과 각기 다른 문양으로써 잘 조화된 색상, 그리고 연에 그려진 문양마다 다른 연의 명칭과 대나무로 교묘하게 잘 다듬어진 연의 살대, 연의 크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과학적인 제작방법을 택하고 있다.

군사작전 신호용으로 사용된 이 연은 연에 그려진 문양과 색깔에 따라 명령 내용을 달리하여 사용되었는데 전투 중에 사전의 상황을 알려 지휘관 또는 병사들에게 전투준비를 갖추라는 예지신호이자 작전명령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즉, 이 신호연은 일종의 통신위성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적군이 알지 못하도록 문양에 각기 다른 암호를 넣어 전투명령 전달의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또한 세계 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과 함께 우리 조상들의 과학성을 입증하는 좋은 증거가 되는 이 연은 당시 국가의 극비였기 때문에 남은 기록이 거의 없어 연의 문양이 지닌 의미를 밝히는 데 상당히 힘든 고증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6~7년만에 31가지의 군사작전 신호연을 재현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연의 문양에 따라 명령이 달랐는데 삼봉산 문양이 있는 ‘삼봉산연’을 띄우면 흩어져 있는 군선과 군사들은 삼봉산 앞 바다로 집결하라는 뜻이 된다. 또 삼각형 모양을 2층으로 크게 그려넣은 ‘기바리연’이 올라가면 백병전으로 왜적과 싸우라는 뜻이며, ‘돌쪽바지기연’을 올리면 병참이나 병기의 보급을 알리는 뜻이 된다.

충무전술비연 중 28가지 연에 대한 각각의 명칭과 연에 그려진 문양이 나타내는 숨은 뜻, 명령의 내용, 그리고 연에 담긴 명령을 언제 수행할 것인지에 대하여 현재 밝혀진 바로는 다음과 같다.(별첨 사진 참조) 총 55종의 문양이 남아있는 이 충무공 전술 신호연은 특이하게도 후퇴라는 명령의 신호가 없었다고 한다.

연의 문양에 넣은 색 또한 우리 민족의 오행사상의 기본색인 빨강(홍), 파랑(청), 노랑(황)의 유채색과 까망(흑) 흰색(백)의 무채색을 사용하였다. 이 색은 각각 오행사상의 오방위를 상징하는데 황은 중앙, 청은 동쪽, 흑은 북쪽, 백은 서쪽, 홍은 남쪽을 뜻한다고 한다. 또 하나는 하늘에 연을 띄웠을 때 붉은 색, 흰색이 검은색이 눈에 가장 잘 띄기 때문이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연의 크기는 가로가 90~120㎝로, 하늘에 높이 띄워도 연에 그려진 문양이 아군들에게 뚜렷하게 보이도록 대형 연을 제작했다고 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통신수단으로서 연의 기능을 볼 때 매우 과학적인 제작방법이 요구된다. 그 중 연의 움직임과 견고함을 결정하는 대살은 그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연을 안정적이고 높게 띄우기 위해서는 기둥살을 윗부분은 둔탁하게, 그리고 아래로 내려오면서 연하게 만들어야 하며, 연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허리살(가늠살)은 사람의 허리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굵어야 힘이 있어 움직임이 용이하고, 너무 가늘면 연이 올라가면서 균형을 잃게 된다.

전략상 통신 및 암호의 수단으로 사용하였던 이 충무공 전술 신호연은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400년 전 전쟁무기로서 수천 수만의 생명을 좌우하는 작전용 명령신호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가운데 방구멍이 있어 바람이 약하거나 강하게 불 때도 자유자재로 날릴 수 있으며,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급상승과 급하강, 전진과 후퇴 등이 가능한 과학적 구조를 가진 방패연의 제작과 이 충무공의 과학적인 연의 이용은 우리 민족의 슬기와 과학적 지혜를 다시한번 엿볼 수 있게 한다.

방패연

■ 방패연의 구조와 특성

방패연의 구조

⑴ 우리 방패연은 보통 직사각형의 한지 대나무 살 5개를 가로질러 붙이고, 가운데에 세계 각국의 연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연만 있는 방구멍이라는 바람구멍을 뚫어 놓은 연으로, 연 위에 그리는 그림 문양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고, 그곳에 과학적으로 벌이 줄을 매어 하늘을 날게 한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방패연의 특징

⑴ 새, 물고기, 용 등의 그림이나 모양으로 그저 높이 띄우는 데만 관심을 갖는 외국연에 비해, 우리 방패연은 방구멍으로 바람이 약할 때에는 바람의 힘을 모아주고, 강할 때에는 바람을 구멍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여, 어느정도 강한 바람에도 연이 잘 상하지 않으므로 바람이 약할 때나 강할 때 모두 잘 날릴 수 있습니다.

⑵ 머릿살의 양끈과 연의 가운데, 아랫부분(꽁숫구멍)의 연줄을 같이 모아 과학적으로 매었으므로, 연 실을 조종하는 얼레 및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연을 하강, 좌우로 빙빙 돌기, 급상승과 급강하 및 전진후퇴 등의 공중묘기를 부릴 수 있습니다. 또한, 얼마든지 높이 날리고, 빠르게도 날릴 수 있는 우리 방패연은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슬기로움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연 위에 장식하는 그림 무늬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려왔으며 (꼭지연, 반달연, 치마연…) 그 중에서도 이 충무공이 만든 “충무전술비연”은 수십가지의 문양으로써 통신과 전술의 신호로 이용해 온 것은 우리 방패연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 방패연 만드는 순서와 각 부분 명칭

○재료 : 머릿살, 허릿살, 장살(2개, 제일 긴 것) 중살,한지, 풀

○준비물 : 자 컴퍼스, 연필, 가위, 튼튼한 실 * 연을 만들기 전에 설명을 잘 읽어본 뒤에 순서대로 한다. * 연 살이 구부러진 것은 양손으로 곧게 잘 편다. * 연 종이를 세로로 반을 접고, 연의 윗부분 머리살 붙이는 곳(약2㎝)은 가로로 접는다. 머릿살, 장살, 중살, 허릿살 붙일 부분에 연필로 줄을 긋고, 방구멍은 규격에 맞게 컴퍼스로 그린 다음 오려낸다.

1. 연의 머릿살을 붙인다.
※ 대나무에는 겉대와 속대가 있는데 마디가 튀어나오고 반질반질한 부분이 겉대이므로 반대쪽인 속대(노란)부분에 풀칠한다.

2. 두 개의 장살을 대각선으로 붙이되, 아래 부분을 먼저 붙이고 위를 붙인다.

3. 다음에 중살과 허릿살을 붙이는데 대각선 장살 밑으로 넣어 붙인다.

4. 머릿살 윗부분 종이에 풀을 칠하여 잘 접어 붙여 마무리 한다.

5. 연이 완성되면 양 귀를 당겨 활벌잇줄을 매고, 양 귀에 모두 줄을 맨 다음, 중살의 아래부분에 그림과 같이 연필로 두 개의 구멍을 뚫어(꽁수구멍) 줄을 매고, 연의 중심이 되는 댓살 교차 부분에도 줄을 매어 네 개의 줄을 합한다.
※ 줄의 길이는, 양 귀의 두줄(벌잇줄)은 꽁수구멍 뚫은 곳까지로, 꽁숫줄의 길이는 양 귀 지점까지로 정하고, 가운데 줄은 약간 느슨하게 하여 4개의 줄을 합하여 매듭을 진다.

■ 방패연 댓살 붙이기 순서 및 명칭

■ 방패연 규격 및 명칭 (가로 : 세로=2 : 3)

연날리기의 요령

⑴ 연은 어떻게 해서 올라가나? 연을 만들어서 날리기 전에 ‘연은 어떻게 올라가는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연이 올라가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한 바람이 있어야 한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고 피부에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바람의 흐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바람은 낮에는 차가운 바다에서 육지로 향해서 불기 때문에 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바라보고 날려야 잘 날고[그림①], 반대로 저녁에는 찬 육지에서 따뜻한 바다쪽으로 불기 때문에 바다를 바라보고 올려야 잘 뜬다[그림②].

그러면 지면 가까이의 바람은 약해도 어느 정도까지 오르면 하늘에서 기류를 타 안정된 연오르기가 된다[그림③]. 다시 말하면 연은 언제나 바람이 필요하기 때문에 맞바람을 이용하여 비스듬히 날리면 올라간다. 이것은 바람 방향으로 미는 힘(저항력, 항력)과 연이 올라가려고 하는 힘(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이 바람과 수직垂直으로 되면 양력이 작동하지 않아 뜨지 않는다. 적당한 양력과 저항력을 받도록 벌이줄과 활벌이줄을 조정해야 한다. * 《25시》로 유명한 루마이나 태생, 프랑스 국적의 소설가. 1974년 직접 우리나라를 방문한 바도 있었던 그는 우리 민족과 문화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었다. 속초문화원에서도 가장 전통있는 행사로서 경연의 형식을 빌려 펼쳐지는 매년 정월 대보름의 ‘연날리기’는 가장 주목을 받는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앞으로 지면이 허락된다면 연재물로 한번 다루어 볼 생각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