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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천강 오늘이-사계절의 선녀

세이레 2006. 4. 6. 00:45
* 한겨레 구전 무속신화 시리즈 그 여덟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제주도 무가 '원천강본풀이'를 상상력을 보태어 재구성한 '원천강 오늘이'입니다. '오늘이'는 이 신화의 주인공 이름이지요. 무속경전 원천강을 맡은 신인데, 자료를 보면 원천강은 사계절을 주관하는 신성공간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구복여행' 유형의 민담이 무가로 편입되어 변모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웬만한 구복여행 자료보다 훨씬 재밌습니다. 아래의 초안은 동화작가 엄혜숙씨의 동화화 작업을 거쳐 <한겨레 옛이야기> 제4권에 수록되었습니다.
 
 
   원천강 오늘이 - 사계절의 선녀
 
 
 아득히 먼 옛날, 해동국의 한 외딴 섬이 있었다. 섬의 사방이 벼랑으로 돼 있는 그 안쪽 가운데에 작은 평지가 있었는데, 거기 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섬을 통털어 사람이라곤 그 둘밖에 없었다. 간혹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에 길을 잃은 사람들이 해변에 머물다 가기도 했지만, 섬 안에까지 들어와 보는 이들은 없었다.
 부부는 서로 깊이 사랑하였으며, 부지런히 일을 하였다. 섬의 얼마 되지 않는 자투리 땅 곳곳에 갖은 곡식과 화초, 나무들을 심었다. 봄이 되면 그들이 심은 갖가지 화초가 색색으로 피어났고, 여름이면 곡식과 채소들이 풍성하게 자랐다. 가을에는 나무에 여러 가지 과일들이 탐스럽게 열렸다. 겨울이 되면 부부는 곡식의 씨와 나무열매를 잘 간수하고, 나무들에 정성껏 옷을 입혀 주었다. 부부의 정성으로 그 외딴 섬은 세월이 갈수록 아름답게 가꾸어졌다.
 이들 부부에게 어느날 딸아이가 하나 생겼다. 옥처럼 고운 아이였다. 부부는 아이에게 온갖 사랑과 정성을 다하였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 밑에서 해맑게 자랐다. 봄꽃처럼 화사했고, 여름 풀처럼 싱그러웠으며, 가을의 과일처럼 탐스러웠고, 겨울의 눈처럼 순박하였다.
 그런데 아이가 겨우 너댓살이 되었을 무렵, 뜻밖의 일이 생겼다. 아이의 부모가 한날 한시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어찌 된 일인고 하니, 옥황상제가 이들을 필요로 하여 하늘나라로 부른 것이었다. 옥황상제는 이들을 신관과 선녀로 삼아서 저승세계의 원천강을 돌보는 일을 맡겼다. 원천강은 인간세상에 사시사철을 보내면서 만물이 번성하도록 하는 곳이었다.
 "그대들이 이 일을 맡을 적임자라오. 정성을 다하도록 하오."
 "상제님. 저희야 상관없지만 우리 어린 딸을 어떻게 하란 말씀이십니까? 제발 저희들을 인간세상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딱한 일이긴 하나 어쩔 수 없구려. 그 아이는 내가 돌볼 것이니 너무 걱정들 마오. 언젠가는 서로 만날 날이 있을 게요."
 섬에 홀로 남겨진 아이는 3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을 홀로 살았다. 가끔 섬을 지나가는 배들이 있었지만, 섬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 긴 세월을 아이는 갖은 화초들, 나무들과 더불어 놀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하늘나라에서 보낸 파랑새와 학, 공작새들이 아이의 친구 노릇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해동국의 한 일행이 배를 타고 강남국에 다녀오던 중에 풍랑을 만나 아이가 살고 있는 섬에 도착하였다. 좀체 멈추지를 않는 풍랑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섬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였다.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 가장자리를 돌다가 좀 비스듬한 곳을 타넘어 섬안을 내려다본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산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분지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그림같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찾아 내려간 사람들은 또 한번 놀랐다. 혼자서 살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너는 대체 누구지? 언제부터 여기 살았느냐?"
 "저도 제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처음부터 이곳에서 살았지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아득하여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그럼 이름도 모르겠구나."
 "네, 성도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불쌍한 것, 부모도 안 계시고 이름도 생일도 아무것도 모르다니. 네가 오늘 우리들을 만났으니 오늘을 생일로 삼고 이름도 오늘이라고 짓자꾸나."
 이렇게 하여 오늘이라고 불리게 된 아이는 사람들을 따라서 해동국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오늘이는 세상 사람들이 모여 사는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아이들이 풀과 나무를 함부로 다루는 것이 몹시 마음 아팠다. 오늘이는 화초와 나무들을 자기 몸같이 아끼고 가꾸었다. 오늘이 덕으로 마을이 점차 아름다워졌다.
 마을에서 사는 동안 오늘이는 마음에 하나의 커다란 아픔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섬에서 혼자 살 때는 그저 막연한 외로움만 느꼈던 것인데, 마을에 살면서 자기 또래의 아이들이 부모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어버이의 정에 대한 그리움을 가눌 수 없었다.
 '나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실까? 지금 어디에 계실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늘이가 열두 살이 됐을 때였다. 평소에 오늘이를 친 손주처럼 돌보아 주던 백씨부인이 어느날 아침 오늘이를 불렀다. 그리고 오늘이에게 말했다.
 "오늘아, 너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니?"
 "할머니, 어찌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부모님을 한번 뵐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어요."
 "그래, 그럼 내 이야기를 잘 듣거라."
 먼 산을 한 번 바라본 백씨부인이 한숨을 짓고 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벌써 이십년이 넘은 일이로구나. 이 동네에 한 부잣집이 있었단다. 그 집에 착하고 잘생긴 아들이 하나 있었지. 그런데 그 아들이 하녀와 서로 사랑하게 됐단다. 그 아들은 부모님에게 결혼을 시켜 달라고 했지. 집안에서 펄쩍 뛰면서 하녀를 먼 곳으로 팔아 버렸단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눈물로 날을 보내던 아들이 홀연 집을 떠나지 않았겠니. 그리고는 다시 이 동네에서 그 청년을 볼 수 없었단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하녀와 함께 멀리 도망간 것이라 했지. 어떻든, 아들이 떠난 뒤로 부잣집이 망하고 집안 식구들도 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단다. 그런데 내가 어젯밤 꿈에 바로 그 부잣집 아들과 하녀를 보지 않았겠니? 사연을 들으니 그새 세상을 떠나 신관과 선녀가 되어 원천강을 지키고 있다는구나."
 오늘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백씨부인을 보았다.
 "그럼 그분들이..."
 "그래, 바로 네 부모님이시다. 나한테 네 이야기를 하면서 잘 좀 보살펴 주라고 하더구나."
 그 말을 듣고 있는 오늘이의 눈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부모님. 그러나 오늘이는 꼭 부모님을 찾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할머니. 저는 부모님을 찾아서 원천강으로 가겠습니다. 가는 길을 알려주세요."
 "저런 저런. 그곳은 네가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 기다리거라. 언젠가는 부모님을 만날 날이 있을게야."
 그러나 오늘이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무리 어렵더라도 꼭 부모님을 만나고자 하였다. 그 모습을 본 백씨부인이 말하였다.
 "쯧쯧. 내가 괜한 얘기를 했나 보구나. 어린 몸으로 어찌 그곳을 찾아갈꼬. 그러나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저 아랫길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가 보거라. 그곳으로 한참을 가면 흰 모래 마을이 나올 게다. 거기 별층당에 글을 읽고 있는 동자가 있는데, 모르는 일이 별로 없다더구나. 그 사람을 찾아가면 도움이 될 게야."
 "고맙습니다, 할머니.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이는 그 길로 곧장 부모님을 찾으러 나섰다. 백씨부인이 알려준 대로 남쪽 길을 잡아 하루 종일 걸었다. 저물 무렵이 다 되어서 오늘이는 흰 모래 마을 별층당에 도착했다. 과연 안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려 왔다.
 한동안 집밖을 맴돌던 오늘이는 용기를 내어 사람을 불렀다.
 "여보세요.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그러자 안에서 푸른 옷을 입은 동자 한 사람이 나왔다.
 "아가씬 누구신지요?"
 "저는 오늘이라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을 찾아서 원천강에 가던 중에 길을 물으러 들렀습니다."
 "그래요, 나는 장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원천강에를 가신다고요? 그곳은 아직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아득히 먼 곳인데... 그나저나 안으로 들어오세요."
 마침 날이 저물었는지라 오늘이는 장상이를 따라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로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하였다. 오늘이가 먼저 부모님을 찾아가는 일을 이야기하자 장상이가 자기 사연을 말해 주었다.
 "그러셨군요. 부모님을 꼭 만나시길 빌겠습니다. 그나저나 제 사연도 한번 들어 보세요. 내 나이 열 여섯인데, 이곳에 앉아서 글만 읽은 것이 벌써 칠년째랍니다. 제가 아무리 원해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무슨 운명인지 이곳을 떠나기만 하면 몸이 아프고 안 좋은 일이 생긴답니다. 그래서 하염없이 여기서 글만 읽고 있지요."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참 이번에 원천강에 가시거든 제 사연을 좀 알아봐 주세요. 왜 이 별층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밤낮 글만 읽어야 하는지를요."
 "예, 잊지 않을께요. 그나저나 원천강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실은 저도 자세한 걸 잘 모른답니다. 그렇지만 방법을 한 가지 가르쳐 드릴께요. 저 서편쪽으로 한참을 가다보면 연화못이라는 큰 연못이 나오는데, 그 연못가에 연꽃이 피는 신기한 나무가 있답니다. 그 나무는 마음이 맑은 사람과 이야기를 통할 수 있다는군요. 아마도 오늘이 아가씨는 연꽃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예요. 그 연꽃 나무에게 길을 물어보도록 하세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날 밤 별층당에서 빈 방을 얻어서 묵은 오늘이는 다음날 아침 일찍 장상이가 가르쳐 준 방향을 잡아 길을 떠났다. 꼬박 한 나절을 가다 보니 과연 큰 연못이 있었다. 연못 속에 연꽃들이 피어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연못가에 연꽃이 피어있는 나무가 하나 서 있었다. 연꽃은 가지 꼭대기에 보기에도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오늘이는 장상이가 일러준 대로 그 나무에게 길을 물었다.
 "연꽃나무님. 저 오늘이를 좀 도와주세요. 저는 부모님을 찾아서 원천강으로 가고 있답니다. 원천강 가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그러자 과연 연꽃나무가 오늘이에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이는 마음의 귀로 연꽃나무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이님이시군요. 그래요 오늘이님, 길을 가르쳐 드리지요. 저 아랫쪽 길로 한참을 가다보면 남해바다가 나온답니다. 그 바닷가 절벽에 동굴이 하나 있지요. 거기 커다란 이무기가 살고 있는데, 아마도 오늘이님을 도와줄 거예요."
 "고맙습니다. 연꽃나무님."
 "그런데 오늘이님, 원천강에 가시거든 제 이상한 팔자에 대해서도 좀 알아다 주세요."
 "어떤...?"
 "저는 겨울에는 뿌리에 움이 들고 정월이면 몸 속에 들지요. 이월이면 가지로 옮겨가고 삼월이 되면 꽃이 핍니다. 그런데 매번 맨 윗가지에만 꽃이 피고 다른 가지에는 꽃이 하나도 안 피는 거예요. 도대체 왜 그런지 알고 싶답니다."
 연꽃나무의 말을 들은 오늘이는 꼭 그 이유를 알아다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연꽃나무가 알려준 대로 남쪽으로 향하였다. 그렇게 또 한 나절을 걸었을 즈음에 드디어 눈앞에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남해 바다였다. 오늘이는 바닷가 절벽을 살피던 중 한 동굴 앞에서 뒹굴고 있는 이무기를 만났다.
 "이무기님, 저는 원천강으로 가고 있답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원천강이라구요? 거긴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닌데... 하긴 나라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런데 원천강은 무슨 일로 가시는지요?"
 "부모님을 만나려고요. 우리 부모님이 그곳을 돌보고 계신답니다."
 "그래요. 그럼 내가 도와줄테니 내 부탁도 하나 들어주세요. 다른 게 아니라 다른 이무기들은 여의주를 하나만 물고도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데 나는 지금 여의주를 세 개나 물고 있는데도 하늘로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어요. 도대체 왜 그런지, 어떻게 해야 용이 될 수 있는지 좀 알아다 주세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러자 이무기는 오늘이더러 자기 등에 타고 몸을 꼭 잡으라고 하였다. 오늘이는 조금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이무기에 몸을 실었다. 오늘이를 태운 이무기는 남해바다와 대천바다를 훌쩍 헤엄쳐 건너고 운무가 자욱한 황천바다를 지나 한 낯선 땅에 오늘이를 내려주었다. 그리고는 오늘이에게 말했다.
 "이곳은 인간세상이 아닌 저승세계지요. 죽은 영혼만이 오는 곳이랍니다. 저기 보이는 길이 극락으로 향하는 길인데 그쪽 어딘가에 원천강이 있다더군요, 난 여기서 기다릴테니 그쪽으로 가보세요."
 오늘이는 이무기가 가르쳐준 쪽으로 길을 나섰다. 땅 색깔이 처음에는 황토빛이더니 점차 노란색으로, 그리고 황금빛과 우윳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땅에 인간세상에서 보지 못한 신기한 꽃과 나무가 가득하였다. 그 꽃과 나무는 오늘이의 마음을 들뜨게 하였다.
 오늘이가 한참 길을 가는데 길가에 한 누각이 보였다. 오늘이가 살펴보니 처녀가 앉아서 글을 읽고 있었다. 오늘이가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길을 물었다.
 "저는 인간세상에서 온 오늘이라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을 찾아서 원천강에 가고 있지요. 원천강으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요?"
 "인간세상 사람이 이곳에 오다니. 원천강에 가려면 이 길을 쭉 따라서 가다가 갈래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으세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서 글을 읽게 되셨나요?"
 "내 이름은 매일이라고 합니다. 본래 하늘나라에서 살았답니다. 그런데 할 일을 안 하고 게으름을 피운 죄로 이곳에 내려와 매일마다 혼자서 글을 읽게 되었지요. 이번에 원천강에 가시거든 언제나 돼야 내 죄가 다 풀리게 되는지 알아봐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오늘이는 다시 길을 떠났다. 한참을 가다보니 매일이의 말대로 갈래길이 나왔다. 그곳에서 오른쪽 길을 잡아서 얼마간 가다 보니 다시 세갈래길이 나왔다. 어느 길로 갈지 몰라서 방황하고 있는데 한편에 젊은 여자들이 모여서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늘이가 다가가서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슬피 우시는지요?"
 "우리는 모두 하늘나라의 선녀들이랍니다. 서로 어울려 놀기에 취해서 그만 천하궁에 물을 길어 올리는 일을 빠뜨렸지요. 그 죄로 이곳에서 물을 푸게 되었답니다. 이 우물물을 다 퍼야만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데 두레박에 구멍이 뚫려 있어 아무리 애를 써도 물이 줄어들지를 않아요. 벌써 몇달째랍니다. 이제 하늘나라에 올라가기는 틀렸나봐요. 흑흑흑."
 그 말을 들은 오늘이는 선녀들이 가엾게 생각되었다. 오늘이는 두레박을 들어올려 구멍난 부분을 살피고는 주변의 풀섶에서 끈끈한 성질을 가진 잎사귀와 열매들을 찾아 모았다. 그것들을 으깨서 한데 뭉친 다음 두레박의 구멍난 곳을 막았다. 그리고 주변의 나무들에서 끈끈한 진을 얻어서 두레박과 풀 반죽 사이의 틈새를 막아 없앴다. 그것을 햇빛에 말리니 단단하게 굳어 물이 새지 않게 되었다. 선녀들이 그 두레박을 받아서 물을 푸니 한 방울도 새지 않고 길어 올려졌다. 금방 우물의 물이 바닥이 났다. 선녀들이 기뻐하며 오늘이에게 말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요. 그러나 저러나 지금 어디로 가시는 길인가요?"
 "저는 부모님을 찾아 원천강으로 가고 있답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나요?"
 "걱정 마세요. 우리들이 안내해 드릴께요."
 선녀들은 앞장을 서서 오늘이를 이끌었다.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서 한참을 가니 멀리 궁궐 같은 커다란 집이 보였다. 그 집 주위에는 높은 담이 쳐져 있었다.
 "저기가 바로 원천강이랍니다. 부디 행복하세요."
 그 말을 남긴 선녀들은 무지개를 타고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오늘이가 궁궐 같은 집 가까이에 다가서 보니 험상궂게 생긴 문지기가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이가 문지기에게 다가가서 말하였다.
 "문지기님. 부모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문을 좀 열어주세요."
 "뭐라고? 이곳은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썩 물러가거라."
 "문지기님, 멀리 인간세상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헤아려 주세요."
 "인간세상이라고? 이런 괴이한 일이 있나? 어림없으니 썩 물러가라. 어서 물러가지 않으면 큰코 다칠 게다."
 오늘이가 아무리 사정해도 문지기는 막무가내였다. 그만 오늘이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땅에 주저앉아 통곡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 인간세상에서 산과 물을 건너 숱한 고생 끝에 부모님 계신 이곳을 찾아왔는데 참으로 박정하시구나. 이 문 안에는 우리 부모 계시련마는, 이 문 앞에 내 와있건마는, 원천강 신인들은 너무도 무정하다. 그리웁던 어머님 그리웁던 아버님, 부모님 어린 딸이 여기 와 있습니다. 부디 살펴 주옵소서."
 문지기는 마음이 약해졌지만, 함부로 외인을 들일 수 없는 처지였다. 그가 울고 있는 오늘이를 억지로 돌려보내려고 다가설 때였다. 문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밖에 웬 소란이냐? 난데없는 울음소리가 진동하니 어찌된 일인지 아뢰어라."
 문지기가 안으로 들어가서 말하였다.
 "인간세상에서 한 여자아이가 부모님을 찾는다고 왔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저리 울고 있습니다. 제가 얼른 돌려보내겠습니다."
 "흠, 인간세상 사람이 어찌 이곳에 왔단 말이냐? 내 한번 볼 터이니 안으로 들여보내라."
 이렇게 해서 오늘이는 대문을 통과하여 원천강으로 들어갔다. 대문 안에 들어가니 대청의 단상에 중년의 남녀가 앉아 있고 좌우에 여러 신관들이 늘어서 있다. 자리에 앉아 있는 신관이 물었다.
 "그래 너는 누구인데, 어찌 이곳에 왔단 말이냐?"
 "저는 인간세상 해동국에 사는 오늘이라고 합니다. 제 부모님이 이곳에 계시다길래 먼 길을 마다 않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저희 부모님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인간세상 해동국이라고? 좀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오늘이는 섬에서 살다가 마을에서 살게 된 일과 백씨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털어놓았다. 오늘이의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 전에 갑자기 단상에 앉아있던 여인이 땅바닥으로 뛰어내려와 오늘이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딸아... 내 딸아..."
 그분은 다름 아닌 오늘이의 어머니였다.
 "어머니? 진정 제 어머니란 말인가요?"
 오늘이는 힘껏 어머니를 껴안았다. 눈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다. 자리에 앉아 그 광경을 보던 신관이 또한 내려와 오늘이의 손을 잡았다.
 "그래 그 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내가 네 아버지로구나."
 "아버지."
 셋은 한동안 말없이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신관과 선녀들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마음을 진정한 오늘이와 부모님은 그 동안 지내왔던 일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끝날 때마다 회한의 눈물이, 기쁨의 눈물이 맺혔다. 꿈 같은 만남이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밤을 새우며 오늘이와 이야기를 나눈 부모님은 다음날 오늘이에게 원천강을 구경시켜 주었다. 집 뒤쪽으로 가니 담장에 문이 네 개 나 있었다. 그 첫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곳에는 봄날의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푸른 새싹이 돋아난 가운데 진달래 개나리 제비꽃 붓꽃 원추리 같은 갖가지 봄꽃이 활짝 피어 있다. 다음 두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곳은 여름이었다.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가운데 보리와 밀 같은 곡식과 채소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다음 세번째 문 안에는 가을이 펼쳐져 있었다. 들판에 누런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고 갖가지 나무에 열매들이 탐스럽게 열려 있으며, 나뭇잎들이 하나 둘 떨어져 흩날리고 있었다. 다음 네번째 문 안은 한겨울이었다. 찬바람이 부는 가운데 흰눈이 하얗게 온세상을 덮고 있다. 오늘이의 아버지가 말하였다.
 "이곳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모여있는 곳이란다. 인간세상 사시사철을 여기서 내보내 주지. 우리가 이 일을 잘 돌보지 않으면 세상에 큰 혼란이 생기게 된단다."
 원천강을 두루 돌아본 오늘이는 부모님과 꿈같은 날을 보냈다. 그렇게 지내기를 사흘째 되던 날 오늘이가 부모님께 말하였다.
 "어머니 아버지. 이제 두 분을 만나뵜으니 제 평생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여기는 제가 함부로 머물 곳이 아니니 이제 그만 돌아가겠어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여러 분들한테 도움받으며 부탁받은 일도 있구요."
 아버지가 말하였다.
 "그래, 아쉽지만 할 수 없구나. 네 말대로 여기는 무한정 머물 곳이 아니야. 떠나가거라.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게다. 그런데 부탁받은 일이란 다 무어냐?"
 오늘이는 원천강까지 오면서 장상이와 연꽃나무, 이무기, 매일이한테서 부탁받은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부모님은 한 가지 한 가지씩 답을 해주었다. 그런 다음 오늘이를 문앞까지 배웅하여 주었다.
 "다시 만날 때까지 부디 몸조심하거라."
 원천강을 떠난 오늘이는 오던 길을 되짚어 바닷가로 향하였다.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매일이를 만났다. 매일이는 여전히 누각에서 글을 읽고 있었다.
 "어떻게, 부모님을 만나셨나요?"
 "예. 다 도와주신 덕분이지요."
 "그것 참 잘 됐군요. 제 일도 좀 알아보셨는지요?"
 "예. 매일이님의 죄는 풀릴 날이 다 됐답니다. 이제 매일이님처럼 몇년째 밤낮으로 글을 읽어온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그런데 그런 분이 어디 계실지..."
 "제가 그런 분을 한분 알고 있답니다. 저를 따라서 오세요."
 오늘이는 매일이와 함께 길을 떠났다.
 오늘이와 매일이가 한참을 걸어서 황천바다 바닷가에 이르니 지난번에 오늘이를 태우고 온 이무기가 여의주 세 개를 입에 넣고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이무기는 오늘이를 보고서 반가워하며 물었다.
 "그래, 부모님을 만나셨나요?"
 "예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무기님 일도 알아왔답니다. 이제 우리들을 다시 바다 건너 인간세상으로 태워다 주시면 알려드리지요."
 이무기는 기뻐하며 오늘이와 매일이를 등에 태우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황천바다 대천바다 남해바다를 헤엄쳐 건너 전에 오늘이를 태웠던 바닷가에 다다랐다. 이무기가 서둘러 물었다.
 "어떻게 하면 용이 된답니까?"
 "이무기님은 욕심이 너무 많아서 하늘로 오르지 못한답니다. 여의주를 하나만 물어야 하는데 세개씩 물고 있다는 거죠."
 그 말을 들은 이무기가 얼른 여의주 두 개를 뱉고서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이건 오늘이님이 가지세요."
 여의주를 하나만 문 이무기는 힘찬 소리와 함께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이무기를 보낸 오늘이와 매일이는 다시 부지런히 걸어서 한 나절 만에 연화못에 이르렀다. 연못가에는 여전히 윗가지에만 꽃이 핀 연꽃나무가 오늘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꽃나무가 오늘이더러 물었다.
 "오늘이님이 떠나신 지 삼년이 넘어 안 오시는 줄 알았답니다. 부모님은 만나셨는지요? 그리고 아랫가지에 꽃을 피우는 방법을 알아보셨는지요?"
 오늘이가 대답했다.
 "저런, 저는 원천강에 사흘밖에 안 있었는데 이곳에는 벌써 삼년이 지났군요. 도와주신 덕분에 부모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꽃 피우는 방법을 알아왔지요. 가진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야 한답니다. 윗가지에 핀 꽃을 맨 처음 보는 사람에게 주면 아랫가지에 꽃이 필 거라고 하셨어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오늘이님이 제일 처음 만나는 분이니 이 꽃을 받으세요."
 연꽃이 핀 가지가 꺾이며 오늘이의 손에 들어가자마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랫가지에 움이 트면서 예쁜 연꽃들이 송이 송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꽃의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오늘이는 여의주와 연꽃을 들고서 다시 길을 떠났다. 한참을 걸어서 지난번에 하룻밤을 묵었던 별층당에 당도하였다. 그곳에는 장상이가 예전처럼 글을 읽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 만에 돌아오셨군요. 그래 부모님은 만나셨는지요?"
 "예, 장상이님이 도와주신 덕택에 부모님을 만나 회포를 풀었답니다. 그리고 장상이님이 부탁하신 일도 알아왔지요."
 "그래요? 나는 왜 이렇게 글만 읽어야 하는 거라고 하던가요?"
 "장상이님은 본래 인간세상 사람이 아니라 하늘나라 선관인데 게으름을 피다가 벌을 받아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이랍니다. 그래서 상제님 뜻으로 글만 읽게 된 것이지요. 이제 장상이님처럼 몇년 동안 홀로 글만 읽어온 처녀를 만나서 결혼하면 죄를 벗고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답니다."
 "그래요? 그런데 그런 처녀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자 오늘이는 함께 온 매일이를 소개했습니다.
 "제가 벌써 배필 되실 분을 모시고 왔답니다. 두 분이 결혼하시면 행복해지실 거예요."
 장상이와 매일이는 기뻐하며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장상이, 매일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별층당에서 하루를 묵은 오늘이는 전에 자신이 살던 마을로 향하였다. 그리고 먼저 백씨부인에게 찾아갔다. 오늘이를 떠나보낸 후 소식이 없어 근심에 잠겨 있던 백씨부인은 오늘이를 보고서 매우 반가워하였다. 오늘이는 부모님을 만난 일과 오가는 도중에 겪은 일들을 이야기하고 이무기에게서 받은 여의주 하나를 백씨부인께 선물하였다.
 그후 오늘이는 해동국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불쌍한 사람을 도와 주었다. 오늘이가 지니고 있는 여의주와 연꽃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오늘이는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아 산 몸으로 하늘나라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늘나라 선녀가 되었다.
 선녀가 된 오늘이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기를 소원하였다. 옥황상제는 그 청을 들어주어 오늘이를 원천강으로 보내어 인간세상에 사계절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도록 하였다. 지금 느껴져 오는 새로운 계절에 대한 소식은 바로 선녀가 된 오늘이가 전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