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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길을묻다

세이레 2008. 12. 27. 18:44

소극장, 길을 묻다

관객에 의한, 관객을 위한 '연극판 짜기' 필요

작성 : 2008-12-22 오후 6:02:19 / 수정 : 2008-12-22 오후 7:28:33

도휘정(hjcastle@jjan.kr) / 이화정(hereandnow81@jjan.kr) / 최기우(desk@jjan.kr) / 문신(desk@jjan.kr)

한국 근·현대극의 역사는 1908년 11월 15일 원각사에서 공연한 이인직의 신연극 '은세계'에서 시작된다. 서울 광화문에 있던 원각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소극장이다. 공보실에서 정부 수립 10주년 사업의 하나로 추진한 원각사는 우리 고유의 민속예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외국인들에게 소개하는 데 설립 목적이 있었다.

전통예술 중심이었던 원각사는 점차 연극, 무용, 합창, 연주 등 현대예술의 공연 발표장으로도 무대를 개방했다. 무대가 없는 연극계에서 원각사는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었으며, 많은 단체들은 원각사에서 새로운 현대극 실험을 시도했다.

이처럼 과거의 소극장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작품을 올려보는 실험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컸다. 예술가들의 창작의욕을 무대에 실현한다는 의미에서 소극장은 의식을 무대적 실험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소극장이 가지는 의미는 도시의 문화공간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초기 실험성으로부터 약간 비켜나 한 극단의 공연무대 또는 연습공간으로서의 기능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낮은 천장과 불편한 의자, 세트 조차 생략한 무대…. 전북에서만 8개의 소극장이 운영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도 소극장은 여전히 생산자 중심이다.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극장 운영만으로도 벅차하는 예술인들을 볼 수 있지만, 소극장이 도시 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시점에서 낭만이나 열정만으로 관객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소극장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지만, 소극장 스스로도 변해야 할 시점. 소극장 역시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를 고민하고 스스로 발전하기 위한 자구책을 모색해야 한다.

▲ 소극장, 공공의 공간으로 넓혀야

현재 전북지역 소극장은 전부 연극 극단이 운영하고 있다. 때문에 소극장에 올려지는 공연의 대부분도 연극이다.

소극장이 증가하면서 각각의 소극장의 색깔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극장을 개인 또는 개별극단의 것으로만 인식하지 말고 공공의 공간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소극장이 다양한 공연예술이 펼쳐지는 공간이었던 것에 반해 최근 소극장은 연극 전용 극장으로서의 기능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악이나 무용 분야에서 소극장 공연은 거의 발굴되지 않고 있다.

일부 극장이 연극 전용 극장으로 지어지기는 했지만, 대관 등을 통해 공연예술의 토대가 됐던 소극장의 초창기적 성격을 되찾는다면 지역 공연예술의 성장에도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오페라를 중심으로 소극장 규모의 공연 제작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소극장의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는 호기라고 할 수 있다.

▲ 소극장, 공간과 인력에 대한 직접 지원 필요해

소극장은 중장기 공연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안정적 연기술을 배양하게 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또한 장기공연을 하는 동안 여러 통로의 수정·보완 과정이 가능해 지면서 다양한 창작극의 발굴·수정·재공연도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재생산 구조를 바탕으로 전북의 연극과 소극장은 80∼90년대 서울 대학로 소극장 중흥시대를 연상시킬 만큼 양적·질적으로 높은 단계에 올라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극장 환경이 여전히 열악하다는 것은 공간 자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또다른 반증이다.

올해 전북도가 문화공간 지원사업을 새로 만들었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1000∼2000만원 정도 지원을 받으면 두 작품을 만들어 90일 동안 공연을 해야 한다. 신청자격은 전년도에 8개월 가량 공연을 했던 공간으로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실제 1년 중 8개월을 공연한 공간은 그렇게 많지않다며 사업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공연예술의 토대가 되는 소극장에 대한 보다 실질적인 지원 정책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인력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소극장을 운영하는 데 있어 기획 및 홍보, 시설 및 관리 등 기본적으로 필요한 인력만이라도 담당자를 따로 두고 싶어하지만, 소극장 임대료도 벌지 못하는 현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극단 기획자나 단원들이 자원봉사식으로 소극장까지 맡다보니 운영도 연극 장르에 한 해 진행하게 된다.

▲ 소극장, 네트워크 통해 다양한 작품 들여와야

전북에서는 1993년 '제1회 소극장연극제'가 개최됐다. '소극장연극제'는 당시 갈등의 골이 깊던 지역의 연극인들이 모처럼 의지를 결합한 자발적인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90년대의 '소극장연극제'는 생명이 짧고 가동률이 낮았던 소극장을 활성화시키 위해 각 극단이 돌아가며 작품을 올려주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는 공간과 극단이 많아지면서 이름만 '소극장연극제'일 뿐 일정 기간 자기 공간에서 자기 작품을 올리는 소극적인 형태로 머물러 있다.

한국 연극 100주년을 맞는 올해, 지난 9월과 10월에는 전국 12개 소극장에서 '전국소극장네트워크페스티벌'이 개최됐다. 전북에서는 극단 데미샘이 상주하고 있는 소극장 오페라가 참여했다. 지역 소극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기획된 '전국소극장네트워크페스티벌'은 지원 미흡, 준비 소홀, 홍보 부족 등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전국 연극인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네트워크 마련의 기회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결론적으로 '소극장연극제'와 '전국소극장네트워크페스티벌'은 형식적인 면에 그칠 것이 아니라 극단, 극장, 지역간 경계를 없애고 교류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돼야 한다. 장기적으로 배우간, 작품간 교류까지 이뤄내며 지역의 관객들에게 새로운 연기, 새로운 공연을 보여줄 수 있었야 한다. 배우나 극단, 소극장 입장에서도 다른 단체 혹은 지역과의 교류는 충분한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 초 부터 지역 연극인들 중심으로 '소극장 연합회'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소극장 관련 공동체가 꾸려진다면 '소극장연극제'에 그치지 않고 좀더 장기적이고 생산적인 논의들이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