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는 수려한 벼랑이 양옆으로 병풍처럼 계곡을 이루고 있어 계곡 끝에 이르면 둘레가 환히 열리면서 바다가
펼쳐졌고, 한라산 꼭대기인 백록담에 내린 빗물이 이곳까지 샘솟아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비취빛 물은 어떤 가뭄에도 줄어들거나 늘어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주 목사(牧使)를 비롯한 관리들이나 선비들이 이 곳에 배를 띄워 풍류를 즐겼고, 둥근 보름달이
휘영청 비추면 거문고 가락이 파도와 어우러져 그들은 시(詩)를 지으며 풍요로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 남해용왕의 아들인
용신(龍神)이 살고 있다고 하여 용연(龍淵), 용담(龍潭), 용소(龍沼)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 곳에 가뭄으로 인한 흉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칠년을 내리 가물게 되자 농사는
물론이고 한라산에 있는 나무에도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밭에 심어놓은 농작물은 말라 비틀어진지 오래였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면서
인심도 흉흉해졌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다급하게 기우제를 지내보았지만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이 무렵 제주성안에 이상한 말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기우제를 지내면 비를 내리게 할 자신이 있다.”
이렇게 큰소리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없어 이 소문은 제주목사의 귀에도 들어갔고,
목사는 군졸들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장 그 사람을 찾아내어 불러들이도록 하라!”
군졸들에게 잡혀 온 고대정이라는 사람은 목사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 말 한 적은 있습니다만, 그 때는 술이 너무 취해서 그만...”
“분명 네가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온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여기 증인들도 있다”
고대정은 이제 더 이상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한번 해보겠습니다. 제물을 차려 주시면 정성껏 올리겠습니다”
할 수 없이 이렇게 대답을 해야 했습니다.
“좋다, 네가 요구하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하도록 하겠지만 대신 기우제가 끝나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네 목을 치도록 하겠다”
엎드려 있는 고대정의 이마에는 구슬땀이 맺혔고, 이제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걸어놓고 기우제를 책임지고
주관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 날부터 고대정은 섬 안에서 내노라고 뽐내는 무당을 모여들도록 하고 굿을 올리기 위해 7일 정성에 들어가 심신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드디어 굿을 하는 날 아침… 이른 새벽부터 용연 언덕 위에 제단을 차려 여러 제물을 올려놓고 날짚을
연결하여 길게 용을 만들었습니다. 만들어진 용의 꼬리는 바로 이 용연물에 담가 적셔놓고, 머리는 제단에 올려놓았습니다. 바로 굿소리가 울려
퍼졌고, 고대정은 그 소리에 맞추어 사방으로 큰 절을 올렸습니다.
“제주에 심한 가뭄을 만나 백성들이 물 그리워 죽어가고 밥 그리워 죽어갑니다, 하늘님아 용신님아 이 굿을
받고 제발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어느덧 굿이 시작된 지 칠일이 지나고, 이제는 굿판에 들었던 천상천하의 모든 신들을 되돌려 보내야 할
날이 되었습니다. 하늘은 더욱 드높아 보였고 기우제는 소용이 없음이 분명했으며, 고대정은 눈물마저 말라 버렸습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간절한
기도는 계속되고, 마지막 축원은 서글피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저기, 저기 비구름이다!”
라고 소리쳤습니다. 짚으로 만들어두었던 용은 용트림을 하며 갑자기 하늘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고,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았는지 마침내 비는 폭포가 되어 내렸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큰
절을 올렸고, 비는 연이어 밤새도록 퍼부어 쏟아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