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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여수의 극단파도소리 연극<코마>제주공연 2023.1.12-1.13

전남여수에서 활동하는 극단파도소리의 대표는 강기호다.

30여년전의 일이다. 자유무대 소극장을 인수 극단자유무대와 통합하여 작업을 할때 였다.

여수에 극단파도소리가 있음을 알게되었고 나는 뭍과의 교류를 하기를 원했다. 연극에 대한 갈증이 많았다.

전화를 걸었다. 

'나는 제주에서 소극장을 열어 소극장운동을 하고 있다. 역량이 모자라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있으니 와서 공연을 해줄 수 없겠냐?'

앞뒤 안가리고 초청에 응해 주었다. 무슨 초청료 등등 말한것도 아니었다. 그쪽하고 연극작품에 대한 교류를 하고 싶다고 욕심을 말한것이다. 마침 소극장도 운영하고 있었으니 우리하고 작업여건은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정작 공연은 와 주었으나, 맞이하는 쪽에서는 정말이지 부족했다. 관객모객을 실패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가 1995년11월24일부터 11월26일까지 삼일간 3회공연을 하였다. 그러니까 28년전 일이다.

<서툰사람들>장 진/작,강기호/연출 이다.

무모함을 감행한 이유는 무었이었을까? 단지 열정과 젊음과 패기로만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모자라보인다.

공연을 마치고 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왜 난 일을 저지르기만 하고 완전해결은 하지못하고 마는것일까? 

누군가는 그랬지, 넌 일을 만들고 저지르는 사람이다. 그러니 계속 이렇게 일을 만들고 저질러야한다. 뒷감당은 다른 사람이 하면된다. 과연 그게 맞는 말이었을까? 사람이 타고난 심성은 고칠 수가 없다고 하는데 사람이 바뀐다는거 무지 어렵다고 하던데, 난 얼마나 바뀌었지? 

지난해는 극단세이레가 창단한지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냥 제주에서 연극하며 소극장운동을 하는 고만고만한 연극단체가 무슨 업적을 이룬게 있다고 기념행사를 하나? 

그러곤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왠걸 뭍에 있는 극단에서 '예술단체가 한두해도 아니고 30주년이나 버티고 성장해왔는데 뭐라도 해야하는게 아니냐'며 "극장에서 먹고 자기라도 하겠다"며, 30주년 행사를 꼭 하자고 성화다.

무언가 속에서 치밀어올라왔다. 그래 해보자. 뭐가 있어서 하는게 아니다. 물론 행사를 치루자면 돈이든다. 한두푼도 아닌데. 겁도 없이 저지른다고 들떠있었다. 어찌하나, 뭔가 수 가 있었야지. 뾰쪽한 수가 있을 리가 없다. 

어느날 아침에 도청문화예술과에서 공문이 도착했다. 코로나19로 힘든 도내전문예술단체21곳에 창작활동지원금을 주겠다는 문서였다. 날아갈것 같았다. 하늘이 도와주는가 생각했다. 찬찬히 문서를보니 조건이 있었다. 자부담이 470만원 결국은 천만원이라 쓰고 430만원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 할까말까 극단에 여윳돈이 없었고 설승혜 당시 대표는 못한다고 했다. 결국은 정민자가 470만원을 대고 하겠다고 결론이 났다.

그리하여 극단세이레 창단30주년 기념공연이 시작되었다. 뭍에서는 여수 극단파도소리, 창원 도파니예술단, 마산의 극단상상창꼬, 밀양의 극단마루가 내려왔다. 흥행은 저조했고, 관객들은 턱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폭설로 공연을 못한 여수팀은 공항에사 이틀간이나 발이 묶였고, 금전적 손실은 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해야된다.

공연날을 정했고, 포스터를 다시만들었다. 네이버예약시스템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등록이 너무 까다롭고,어려웠기때문이다. 이준 디자이너가 더이상은 못한단다. 실망했지만 언제까지 외부인력에 기댈것도 아니지 아닌가? 처음부터 내가 배워야 했는데, 못배우니 이런 사단이 났다. 일주일 뒤면 막은 올라간다. 이젠 일을 도울 사람도 없고 혼자 헤쳐나가야한다. 

여수극단파도소리의 연극코마 제주공연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