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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스크랩] 우리신화가-(박희순-동초등교사)

[교단산책]그리스 로마 신화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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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24일 00시 00분 입력

 사람들은 제주를 일컬어 ‘신들의 고향, 신화의 천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아이들은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제주신화를 모르고 자란다. 그리스 로마 신화만을 신화로 여기며 그 속의 신들을 동경한다. 우리의 이야기보다 외국의 전래 동화 속에서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를 꿈꾼다.

 이야기는 문화 그 자체요, 총체적으로 습득되는 가치체계이다. 외국의 명작들을 과식한 아이들이 무엇을 꿈꾸고 어떤 가치관을 갖게 되는지는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우리 것이 사라지고 점점 서구화되어가는 아이들에게 이 시대 어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가장 우리다운 것으로 내면을 채우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싶었다.

 제주의 신화, 전설, 민담들을 모으는 작업부터 하였다. 너무나 훌륭한 이야기들이 우리 제주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천지창조 신화인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를 비롯하여 환타지의 극치를 보여주는 ‘자청비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끝도 없는 이야기의 세계가 우리 제주인의 저변을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교재화하였다. 그리고 그 교재를 가지고 어떠한 수업을 해야 할 것인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적용해 보았다. 제주에 신화가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아이들이 점차 제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이야기를 즐길 줄 아는 아이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천지왕을 제우스와 비교하며 긍지를 갖고, 설문대할망이 들어간 물장오리를 아쉬워하였다. 가믄장아기의 힘을 빌려 억눌렸던 자아를 표면화시키고 대리만족도 느끼기 시작하였다. 설명도 필요없고 훈화는 더더욱 필요없었다. 가슴으로 체험하며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교사인 나는 이야기꾼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장단을 주고받았다. 아이들은 조물조물 찰흙을 만지면서 상상 속의 것들을 밖으로 구체화시키기 시작하였다.

 크레파스, 색종이, 한지 등으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설화 속 세계를 자유롭게 표현하였다. 연극놀이로 표현할 때에는 모두가 주연이 되어 교실을 생동감 넘치는 무대로 만들었다.

 이야기 세계가 펼쳐지던 교실에서 그런 것처럼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라는 무대에서도 모두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지혜롭고 활기차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교실에서의 체험들이 삶을 일궈내는 생명력으로 아이들 가슴에서 되살아날 때 이 사회도 희망으로 푸르를 것이기 때문이다.

 괴테나 안데르센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은 어린시절 그 나라, 그 지역의 설화를 구연해 주는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 꿈을 키웠다는 사실을 우리 제주의 어른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왜 그리스 로마 신화만 읽는지 묻기 전에 보물처럼 가득 쌓인 제주의 설화들을 캐내어 아이들 가슴 속에 심어주는 어른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주가 품고 있는 세계적 문화유산인 신화와 전설 그리고 민담들이 우리 아이들의 가슴 속에서 되살아날 때, 우리 제주의 아이들이 세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위대한 작가들로 탄생하여 제주설화를 기반으로 한 세계적인 작품으로 제주를 꽃피우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박희순 제주동초등학교 교사>
출처 : 세이레(sayre)
글쓴이 : sayr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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