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이레 아트센터/연극 공연 소식

슬픔의 노래-소개


1.기획의도
꽃잎(1995. 장선우 감독), 박하사탕(2000, 이창동 감독) 등 1980년의 광주를 다룬 영화가 이미 제작된 바 있으나, 그 어떠한 작품도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관한 깊이있는 성찰과 접근을 보여준적 없다. 뛰어난 작품성으로 찬사를 받은 '박사사탕'에서 조차도 5.18은 우리 현대사가 지닌 상처의 부분으로만 묘사될 뿐이었다. 광주민주항쟁의 가치와 비중을 감안했을때 이는 너무도 무책임한 현실임에 틀림없다.
중견 소설가 정찬의 1995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슬픔의 노래'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광주를 다룬 소설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는 '슬픔의 노래'는, 그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정평이 난 바 있으며 연극으로 각색되면서 연극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5.18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이 작품이 영화로 다시 태어난다면, 광주의 본질이 오롯이 담긴 우리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며 아울러 조금은 경박해진 한국 영화계에 의미있는 충격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2.배경
1990년대 중반, 폴란드 남부 슐레지엔 지방의 소도시 카토비체.

3.등장인물
유성균: 국내 모 일간지의 기자, 동시에 소설가. 예술의 본질에 관한 끊임없는 탐구와 고뇌를 거듭하는, 작품을 이끌어가는 인물.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관찰력의 소유자이다.
박운형: 폴란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한다. 작품의 핵심이 되는 인물로 어둡고 음침한 내면이 매우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말수가 적으며 냉소적이고 다소 거칠기도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비극적 인물이다.
민영수: 유성균의 친구로 밝고 쾌활한 성격의 사나이. 폴란드에 출장온 유성균을 위해 같이 살고있는 박운형에게 통역을 맡긴다. 폴란드에 유학온 영화학도로 작품 전체에 유쾌한 분위기를 수혈하지만 그 역시 내면에 숨겨진 상처가 있다.

4.줄거리

#Chapter 1.
국내의 한 언론사에 근무하는 기자이며 동시에 소설가인 유성균은 공산권의 전통있는 음악원을 소개한다는 언론사측의 기획에 의해 폴란드로 출장을 가게된다. 또한 그는 경이적인 판매량을 기록한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의 작곡가 헨릭 구레츠키를 인터뷰하라는 데스크의 지시를 받는다. 폴란드로 간 유성균은 그곳 로즈 연극영화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오랜 친구 민영수와 재회하고, 그의 소개로 통역을 맡게된 박운형을 만난다. 박운형은 미국에서 활동을 하다가 그로토프스키의 연극 '아크로폴리스'를 보고 폴란드로 건너온 연극배우였다.

#Chapter 2.
어렵게 성사 된 구레츠키와의 인터뷰에서 구레츠키는 폴란드의 역사와 '슬픔의 노래'와의 관계, 그로토프스키의 '아크로폴리스'와 아우슈비츠를 예로 들어 예술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예술가란 살아 남은 자의 형벌을 가장 민감히 느끼는 사람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형벌이기도 하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존재한다. 축복과 형벌은 이 빛과 어둠의 관계다. 그런데 예술가는 축복보다 형벌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형벌을 견뎌야 한다. 견디지 못하는 자는 단언하건대 예술가가 아니다."

"슬픔의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강이 있음을 일깨우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예술가는 볼 수 있는 자다. 그 눈은 강의 흐름을 본다. 예술가는 들을 수 있는 자다. 그 귀는 강물로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예술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빛은 슬픔의 강 너머에 있다. 이제 내가 당신들한테 질문하고 싶다. 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Chapter 3.
인터뷰 이후, 유성균은 구레츠키와 통역을 맡은 박운형의 내면적 모습이 서로 비슷함을 느낀다. 그들은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박운형은 이상하게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말로 '축복 받은 땅'이지만 그곳은 유태인의 지옥이었다. 마치 빛고을 '광주'가 그런듯 언어의 아이러니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명인 것이다.

#Chapter 4.
영화의 클라이막스.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이후, 박운형의 내부적 갈등은 집시가 경영하는 술집의 작은 무대위에서 폭발한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으며 목소리에는 비통과 격정과 차가움이 뒤섞였다. 구겨지듯 뒤틀린 얼굴은 너무나 처참해 기괴한 지경이다. 광기어린 독백이 시작된다.

"무대는 오월의 봄날입니다.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르고 대지는 화사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그 봄날 속에서 얼룩무늬 군복의 군인들을 가득 실은 차가 질주하고 있습니다. 전남대 정문, 금남로, 시외버스 터미널을 지나 아세아극장 앞에서 차가 멈추었습니다. 베레모를 벗고 방탄 헬멧을 쓴 군인들은 차에서 내려 4열 횡대로 섭니다.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그들의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습니다."

"눈의 붉은 빛은 점차 깊고 짙어집니다. 그것은 징후입니다. 운명의 잔혹한 징후. 그 징후가 그들의 몸 속에서 꿈틀거리며 일어납니다. 머리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 몸을 가로지르며 질주합니다. 내장은 뒤집어지고, 피들은 폭풍우 치는 바다처럼 으르렁거립니다. 눈은 불타오르는 듯하다가 흐릿해지고, 붉은 혀가 거무죽죽하게 되면서 고무처럼 늘어나고, 부글부글 끓는 정신은 아우성을 치며 바깥을 향한 탈출구를 찾고 있습니다."

"무대는 아비규환입니다. 살이 찢기고 피가 튀는 소리, 두개골이 깨어지고 뼈가 바수어지는 소리. 그 비명과 울부짖음. 대지는 입을 벌려 피를 받고, 빛은 잔혹의 중심에서 춤을 춥니다."

"빛의 춤 속에서 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나오고 있습니다. 그의 두 손은 피에 젖어 있습니다. 무대는 일순간 정적에 잠기고, 어둠이 천천히 내려앉습니다. 그는 낭자한 피내음에 흠칫 놀랍니다. 대검에 가슴 깊숙이 찔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멍하니 보다가 짚풀처럼 쓰러진 청년의 얼굴이 오버랩됩니다."

"나는 이 백성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그 날이 와서 대낮에 해가 꺼지고 백주에 땅이 컴컴해지거든 모두 내가 한 일인지 알아라. 순례절에도 통곡소리 터지고 모든 노래가 울음으로 바뀌리라."

"나 야훼가 선고한다. 다마스커스가 지은 죄, 그 쌓이고 쌓인 죄 때문에 나는 다마스커스를 벌하고야 말리라. 나 야훼가 선고한다. 가자가 지은 죄, 그 쌓이고 쌓인 죄 때문에 나는 가자를 벌하고야 말리라. 나 야훼가 선고한다. 티로가 지은 죄, 그 쌓이고 쌓인 죄 때문에 나는 티로를 벌하고야 말리라."


#Chapter 5.
며칠 후, 유성균은 폴란드를 떠나기 전 박운형을 만나다.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던 박운형은 '광주항쟁'과 그것을 조명한 '소설', 그리고 '진실'과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면서 그 자신이 처한 고통을 고백한다. 그는 '슬픔의 강 너머에 있는 빛을 어떻게 건너는가' 란 구레츠키의 물음에 대해 두가지 해답을 제시한다. 배를 타는 것과 스스로 강이 되는 것.
그는 돌아서서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뭉클한 안개는 이내 그를 가렸고, 유성균의 귀속에서는 가느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현악기의 한없이 낮은 소리. 그 소리에 이어 깊은 슬픔의 노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아름답게 우는 신의 새여
그 아이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오
신의 작은 꽃이여
내 아이가 행복히 잠들 수 있도록
활짝 꽃을 피워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