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소극장
생성·소멸 반복…현재 민들레소극장·씨디아트홀·문예정터 등 명맥 유지
작성 : 2008-12-09 오후 6:57:55 / 수정 : 2008-12-09 오후 8:13:46
도휘정(hjcastle@jjan.kr) / 이화정(hereandnow81@jjan.kr) / 최기우(desk@jjan.kr) / 문신(desk@jjan.kr)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조성되고 있는 광주. 광주의 소극장 역시 연극인들이 중심이 돼 있었지만, 광주지역의 연극판은 의외로 척박했다.
소극장 숫자는 도시 규모나 도세 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북지역에 비해 적은 편. 공연도 띄엄띄엄 열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소극장은 3개, 많아야 4개 정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소극장이나 연극인들간의 교류도 거의 없는 듯 했다. 광주에서 만난 연극인들 역시 "광주는 미술 쪽이 강한 편이어서 우스갯소리로 '예술의 거리'는 '표구의 거리'라고 말한다"며 "광주 정도라면 6개 정도는 활발하게 활동해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광주의 소극장도 생성과 소멸을 반복했다. 특히 90년대는 광주의 소극장 문화에 변화가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90년대 초반과 중반에는 씨엘아트홀과 터소극장, 아리소극장, 연바람소극장, 드라마스튜디오 등이 있었으며 후반에는 문예정터, 민들레소극장, 연바람소극장 등이 부활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는 관에서 지원하는 궁동예술극장이 더해졌으며, 현재는 민들레소극장과 씨디아트홀, 문예정터 등이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세월의 부침 속에서도 그 안에는 늘 광주의 소극장을 부흥시키고 역사를 이어가려는 움직임들이 살아있었다. 광주의 대표적인 소극장 '씨디아트홀'과 '민들레소극장'을 찾았다.
▲ 씨디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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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디(Creative Drama)아트홀은 올 3월 개관했다. 광주광역시 신안동 '전남대 정문 사거리'에 위치, 대학가에 14년 만에 다시 생긴 소극장이다.
씨디아트홀은 대학가에 있는 유일한 소극장으로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 시내 중심가는 임대료가 비싸기 때문에 섣불리 진입할 수가 없었다.
지난달 29일 취재차 씨디아트홀을 방문했을 때에는 남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행원 대표는 "경제적인 여유가 없다 보니 돈이 생길 때마다 그 때 그 때 공사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씨디아트홀은 광주연극배우협회의 '밑바닥에서'란 공연을 앞두고 있었다. 막심 고리키 원작의 '밑바닥에서'를 소극장에서 공연한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시도. 이대표는 "정통연극은 물론 뮤지컬, 퍼포먼스, 비보이 등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다 가능한 것이 바로 소극장 무대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씨디아트홀은 70석 규모로, 무대와 객석 이외에도 조명음향실과 분장실을 따로 가지고 있다. 운영을 위해서는 월 30만원 이상이 고정적으로 들어가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진 공연만으로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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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짧은 역사에도 씨디아트홀이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오랫동안 연극을 해 온 중견연극인 10여명이 주축이 돼 만들었기 때문. 20년 이상 연극판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기존 극단의 시스템에 불만을 가지고 새로운 창작을 꿈꾸며 만났다"며 "소극장 운영도 두려움이 있었지만,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씨디아트홀은 '그곳에 가면 늘 공연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관 초부터 '극장을 놀리지 않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계절별로 테마공연을 하기로 했다. 봄-따뜻한 연극, 여름-호러 또는 코미디, 가을-서정적 연극, 겨울-가족극 또는 악극 등. 씨디아트홀에 속해 있는 극단 씨디 이외에도 극장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대관도 한다. 대관료는 1일 15만원. 1일 30∼50만원까지 하는 서울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소극장 운영도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문화향수권과 지정좌석제가 대표적인 예. 씨디아트홀에서 하는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는 문화향수권은 1만5000원짜리와 1만원짜리 두 종류. 특히 개관식에서 많이 팔렸다. 지정좌석제 역시 사전예매를 유도할 수 있다. 씨디아트홀은 문화향수권과 지정좌석제를 도입, 소극장 문화를 새롭게 열어가고 있었다.
▲ 민들레소극장
극단 토박이가 운영하고 있는 민들레소극장은 광주 문화판에 있어 상징적 의미가 크다.
1988년 광주항쟁을 다룬 작품 '금희의 오월'을 올려 전국적으로 이슈가 됐으며, 경제적 이유로 소극장이 문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지역 문화예술인들은 자신의 작품을 내놓거나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펼쳤다.
유독 대학 연극반이 활발했던 80년대. 민주항쟁과 함께 연극반원들도 수배생활을 하게되면서 70년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는 연극이나 소극장도 멈춤 상태였다. 그러나 '소극장 운동'에 대한 열망만큼은 강했다. 이해정 대표는 "그러나 연극, 미술, 음악, 문화 등 각 부분들이 결합된 문화운동이라면 모를까 광주에서 소극장들이 연대를 하는 등의 움직임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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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박이는 1983년 창단됐다. 민들레소극장은 89년 전남대 정문 앞에 처음 개관했다가 94년 지금의 위치인 광주광역시 궁동 예술의거리로 이전했다. 이대표는 "전대 정문시절 돈이 없어 폐관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각계각층에서 민들레소극장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폐관을 피할 수 있었다"며 "가끔 이 공간이 특별하다는 생각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 극장을 존속시킨 이유에 대해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대표는 "민들레소극장은 누구나 대관이 가능하지만 아무나 하지는 못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에게 있어 소극장은 자기만의 색깔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토박이 역시 일정부분 의식을 지닌 극단으로서 민들레소극장을 통해 메시지가 있는 작품들을 공연해 왔다. 때문에 대관에 있어서도 내용 심의는 중요하다. 관의 지원은 내부 규정을 두고 지원사업을 선별해 응모한다.
민들레소극장은 1년이면 6개월 정도 가동된다. 대관료는 원래 1일 20만원이었지만, 소극장을 이용하는 이들의 형편이 대부분 넉넉치 않아 1일 10만원으로 내렸다.
총 공간은 30평 정도. 객석은 80석 규모로, 가변식으로 해 작품이나 무대에 맞춰 객석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했다. 이대표는 "옛날 건물이라 천장이 낮아 사실 소극장이 들어서기에는 적합치 않다"며 "민들레소극장 역시 장기적 계획을 세우기 위해 여러가지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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