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아트센터 스타일에 대한 반성
한국에서 아트센터(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의 개념은 1978년 세종문화회관의 개관과 더불어 도입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1988년 개관한 예술의전당은 Seoul Arts Center라고 영문 명칭을 정했고 세종문화회관도 처음에는 Sejong Cultural Center라고 영문 명칭을 붙였다가 요즘 들어선 Sejong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Center라고 부른다. 아트센터란 일단 음악, 오페라, 연극, 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망라하는 여러개의 크고 작은 공연장을 갖추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전시장, 컨벤션홀, 야외극장까지 거느리는 경우가 많다. 뉴욕의 링컨센터를 본따 만든 아트센터의 여파로 국립극장에서도 최근 대극장(해오름극장)과 소극장(달오름극장)외에 별오름극장, 하늘극장까지 개관했다.
2000년에 개관한 LG아트센터의 경우 공연장이 상남홀(1,100석) 하나 뿐인데도 이름을 아트센터라고 명명한 것을 보면 한국에선 아트센터라는 이름이 정말 매력적인 존재인가 보다. 1970년대 이후 세계적인 주요 도시에서 문을 여는 공연장들도 아트센터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다. 예술의전당이 설계 당시 참고했던 외국 공연장도 뉴욕 링컨센터, 런던 바비칸센터,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호주 시드니오페라하우스 등 복합문화공간이다.
문제는 요즘들어 아트센터 스타일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런던 사우스뱅크센터 내의 로열페스티벌홀, 퀸 엘리자베스홀, 퍼셀룸 등은 모두 별개의 극장으로 분리시킨 다음 경영도 따로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나의 무대공간이 다른 공연장에 경제적으로나 행정적으로 부담을 주거나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2001년 한국의 음악계를 돌아보는 글에서 아트센터의 몰락이라는 제목이 문뜩 떠오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요컨대 아트센터는 처음에는 콘서트, 연극, 오페라 등 클래식공연 음악의 보급을 위한 전진기지로 출범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원래의 설립취지와는 달리 점점 대중취향의 공연장르에 복무하는 기관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준 높은 공연이라도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공연은 아트센터에 재정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아트센터가 겉보기엔 매우 엘리트 지향적인 고급문화를 무대에 올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문화의 민주주의' '고급예술의 대중화'라는 미명하에 문화적 포퓰리즘의 선봉에 서고 있다. 공연이란 전시와 다른 것이어서 공연장 분위기나 백스테이지가 공연의 질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클래식 음악인이나 연주단체들이 아트센터의 무대를 대관해 공연하면서 이런저런 일로 불편을 느낀다면 처음부터 양질의 공연을 기대하기는 힘든 일이다. 대중취미의 절충적 프로그램을 선호하면서 클래식 공연이 홀대를 받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아트센터가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것은 가령 관객 1천만명 돌파 같은 기록이나 객석점유율, 총입장객수다. 정부나 국회에서도 이같은 숫자놀음에 현혹되어 정작 질적인 면에 대한 평가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다익선이라는 구호는 적어도 공연예술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공연 장르에 따라 의미가 좀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것은 유료관객수다.
Ⅱ. 숫자놀음에 불과한 재정자립도와 속빈 강정 뿐인 자체 기획공연
잘 알다시피 클래식 공연은 기획을 하면 할수록 손해다. 기획사든 공연장이든 클래식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고 한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 좋은 공연일수록 더 그렇다. 그러니 아트센터가 스스로 앞장서서 양질의 클래식 공연을 제작하고 기획할 리가 만무하다. 그나마 몇 안되는 자체 기획공연도 한꺼풀 벗겨보면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자체 기획공연은 예년에 비해 부쩍 늘고 있으나 내용이나 수준면에서는 '부실'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관 일변도에서 탈피해 공연장의 위상도 높이고 수익도 올리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기획공연이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기획공연 비율을 높이기 위한 실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연주단체나 외부 군소 기획사들의 대관공연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무대만 양산하면서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흥행성이 이미 보장된 외부 대관공연에 숟가락 하나 얹어 놓듯 공동주최라는 명목으로 생색을 내면서 수익금의 분배를 요구한다. 심지어 연주자 선정도 실력보다 협찬기업 동원능력을 감안한 것이라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부실 기획공연이 양산되면서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공연장의 '명성'만 믿고 음악회를 찾는 관객들이다. 실망스러운 기획공연이 늘어날수록 관객이 공연장에 발길을 끊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다.
기획공연은 공연장의 '얼굴'이다. 카네기홀은 기획공연이 아닌 음악회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카네기홀과는 무관한 공연'임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그만큼 기획공연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크다.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관객동원면에서 대관공연에 크게 뒤지는 기획공연이라면 흥행에 유리한 어린이날, 어버이날, 여름방학이나 주말 오후를 공연장이 선점하면서 대관마저 어렵게 만든다는 일선 연주단체나 공연기획사들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센터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의 방향 설정은 한국의 공연문화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이 공연을 올릴 무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대관과 공연기획 등 모든 부문에 있어서 공연장의 역할은 막대하다. 그런 뜻에서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한국최고의 문화권력 기관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막강한 권력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하지만 최근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의 영향력이 클래식 음악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정반대다.
재정자립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관객이나 연주자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왔고, 오페라보다는 뮤지컬이나 악극에 장기 대관하는 것을 서슴지 않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대중가수의 공연을 대관도 아닌 기획공연으로 제작해오고 있는 것이다.
Ⅲ. 아트센터와 대중가수의 공연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대중가수가 서는 일은 문화계의 빅 뉴스로 취급되었다. '클래식의 전당에 입성' 등등의 기사 제목을 보면 마치 문화적 편견과 시대착오적인 허울을 벗어 던지면서 대중가수가 클래식 음악의 아성을 무너뜨린 것 같은 통쾌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즘에는 H.O.T나 조성모는 물론이고 이문세, 이미자, 양희은, 조영남 등이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선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다. 또 신세대 가수들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보다는 잠실 올림픽공원 내의 체육관이나 올림픽 주경기장을 선호한다. 세종문화회관의 3,600석은 이들 신세대 가수들에게는 너무 좁은 무대다. 세종문화회관은 이제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는 4, 50대 가수들의 무대가 된 것 같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나 세종문화회관 1층 커피숍을 개조한 카페 오페라하우스는 가수 서유석이 운영하는 중년을 위한 라이브 카페로 마치 미사리 카페를 서울 한복판에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다. 카페의 간판은 오페라하우스로 세종문화회관의 분위기와는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다.
또 예술의전당의 경우 몇년째 우리시대의 음악이라는 타이틀로 가수 조용필의 콘서트를 연말 시즌에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리고 있다. 예술의전당이 대중가수를 무대에 세우는 것은 '문호개방'이 아니라 상업적 인기에 편승한 돈벌이 수단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처음부터 다목적홀로 설계돼 객석수가 너무 많고 음향이 좋지 않아 클래식 연주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이 팝공연을 유치하는 것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객석 2,300석짜리 오페라 전용극장이 자체 기획공연으로 크로스오버 무대도 아닌 대중가수의 단독공연을 마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고급예술의 대중화가 아니라 조명과 무대장치로 고급예술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한 대중예술이나 다름없다.
예술의전당측은 "조용필은 대중가수라기 보다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라며 "이번 공연을 신호탄으로 국민적 지지도가 높고 음악성을 평가 받은 대중가수에게 오페라극장의 문을 점차 개방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케스트라공연이나 오페라가수의 독창회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물며 신파조 악극에 이어 대중가수의 공연에까지 자리를 내주는 것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내놓은, 설립취지에 어긋나는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볼 수밖에 없다. 또 예술의전당 국정감사 때마다 '대중가수에게 무대를 개방하라'고 문화관광위 소속 일부 국회위원들의 대책 없는 주문에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정부'의 문화정책이 보여주는 문화적 포퓰리즘이 결국 오페라극장에서 <조용필콘서트>를 자체 기획공연으로 개최하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관신청에서 형평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국내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삼류 오케스트라의 대관 일수를 공평하게 배분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아트센터는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존재하는 대형건물이 아니다. 대형현수막과 전광판을 설치해 지나는 행인이나 자동차의 눈길을 빼앗는 광고판도 아니다. 공연장에 나부끼는 대형현수막이 마치 실속 있는 기획공연이 부족한 외화내빈(外華內貧)을 웅변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Ⅳ. 아트센터의 몰락
아트센터의 몰락을 보여주는 가장 단적인 예는 예술의전당이 2001년 공연예술사업본부장까지 겸임하던 상임 예술감독제를 없애고 비상임 예술감독을 두면서 공연사업본부장을 내부직원 출신에게 맡긴 것이다. 전문화라는 미명 아래 오히려 예술감독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는 비난과 함께, 상임 예술감독제 실시 6년 동안 계속돼온 '예술' 과 '행정'의 갈등과 반목이 '예술'의 패배로 끝났다는 자조섞인 분석도 나왔다. 예술의전당측은 "그동안 상근 예술감독은 할 일이 마땅치 않아 일반행정업무도 맡아왔는데 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공연장의 예술정책과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것이 '행정업무'는 아니다. 적어도 '예술의전당'에서 예술과 행정이 대립하고 갈등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예술이다. 홍보, 고객관리 등 마케팅기법이 아무리 뛰어나도 예술정책 자체의 결점을 보완해 줄 수는 없다. 과감한 예술적 모험이나 비전의 제시가 없다면 아트센터는 몰락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경우 외부 대관공연이나 다를 바 없는 뮤지컬 <명성황후><라이프><스톰프>, 악극 <비내리는 고모령>, 볼쇼이 아이스발레, 무용 <포에버 탱고> 그리고 국립발레단 등 상주단체의 정기공연을 자체기획에 포함시켰다. 대관료 납부를 연기해주는 방법으로 그 금액만큼 명목상의 '투자'를 한 다음, 이를 티켓판매액으로 돌려받는 식이다. 이른바 공동제작이다. 해당 공연의 경우만 보면 재정자립도는 100%다. 여기에 홍보 등의 이유를 내세워 수익금에서 챙기는 초과지분을 보태면 120%에 이른다. 공동제작은 흥행성이 보장되고 대관료도 오페라보다 회당 100만원 비싼 뮤지컬, 악극에 집중된다. 상주단체의 공연이라고 해서 모두 공동제작을 하는 것도 아니다. 평균 유료관객 1,585명을 기록한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공동주최였지만 각각 평균 유료관객 781명과 396명에 불과했던 국립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와 <시몬 보카네그라>는 대관공연으로 처리됐다. 알짜배기 공연에만 손을 내밀어 기획공연의 비율도 높이고 재정자립도 수치도 높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셈이다.
2001년 초부터 2002년 7월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공연은 뮤지컬(악극 포함) 226일, 오페라 42일, 발레 33일, 무용 18일 순으로 나타났다. 뮤지컬이 전체 공연일수의 70%에 이른다. 이쯤되면 오페라와 발레 전용극장이라는 당초 취지가 무색해진다. 이 대목에서 아트센터의 몰락이라는 구절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상주단체인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에 우선권을 준 다음 다른 오페라, 발레단의 대관신청을 받고, 그래도 남는 날짜에 뮤지컬, 악극, 무용을 올리는 등 보완조치가 따라야 한다.
특수법인으로 막대한 국고와 공익자금을 지원받고 있는 비영리적 공공 예술기관이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상업적인 뮤지컬, 악극의 공동제작에 열을 올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IMF 위기 이후 국고 지원금을 타내기 위한 창작오페라가 우후죽순처럼 졸속으로 제작돼 무대에 오른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이들 오페라의 대부분이 오페라 전용극장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이 아닌 다른 무대에서 초연되었다.
졸속이라는 이유로, 관객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상연을 외면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오페라계의 현 상황이 일차적으로는 간판 뿐인 오페라단을 양산해 지원금 타내기에 바쁘고 좋은 공연보다는 포스터 한번 만드는 데 만족하는 음악계 인사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하지만 공연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주지는 못할망정 이를 방치한 극장에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연장 운영으로 흑자를 내겠다는 발상부터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양질의 기획공연을 제작하는 데 따른 재원은 여론에 호소해 국가나 기업 등 외부지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예술경영을 펼치지 않고 소극적인 태세로 임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자금으로 운영되는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이 뮤지컬, 악극, 대중가수의 공연에 공동제작형식으로 참가하고 대관에도 우선권을 준다면 정부나 서울시가 대중예술을 지원하는 셈이다. 대중예술이란 처음부터 상업성과 흥행성을 담보로 출발한 것이므로 더 이상의 지원은 필요하지 않다. 매표수익과 약간의 기업협찬으로 충분히 제작비를 건질 수 없는 뮤지컬, 악극이라면 처음부터 제작하지 않아야 옳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예술의전당의 최근 3년간 재정자립도는 1998년 78.3%, 99년 85.5%, 2000년 87.2%로 점점 높아졌지만 전체 관람객은 2백32만3,000명(98년), 1백71만6,000명(99년), 1백62만6,000명(2000년)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관람객 숫자가 공연의 질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예술의전당이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문화적 혜택을 준다는 명목으로 대중취향의 프로그램을 대거 유치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로 관객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Ⅴ. 지방 문예회관의 경우
서울에 있는 두 개의 아트센터가 중요한 이유는 지방에서도 이들 극장을 모델로 삼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지방 도시마다 들어선 문화회관은 세종문화회관, 90년대말 이후 청주, 의정부, 전주에 들어선 공연장은 예술의전당의 이름 뿐만 아니라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전주소리문화의전당은 전주시 덕진동 3만여평의 부지에 1,089억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8월 준공된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용 음악당은 없다. 모악당(2,138석)은 창극, 오페라, 뮤지컬, 발레, 무용공연이 가능한 다목적홀이며, 건물은 예술의전당 음악당, 부채꼴 객석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떠올리게 한다. 연지홀(714석)은 객석수만 적을 뿐 수용 장르는 모악당과 거의 같다. 연지홀은 우면산 암반 때문에 무대 좌우의 포켓 중 하나를 생략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설계를 그대로 본따서 지었다. 이밖에도 국악 전용홀인 명인홀(222석), 반원형 계단으로 꾸며진 야외공연장(8,000석)과 국제회의장, 전시장, 놀이마당을 갖추고 있다.
화장실과 로비를 단장한 것 외에는 30년이 넘게 이렇다 할 개보수 공사를 벌이지 않은 세종문화회관처럼 대부분의 지방 문예회관은 음향 개보수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그런 가운데 2001년 7월부터 3개월간의 음향 개보수 공사를 끝내고 재개관한 울산문예회관은 지방 문예회관의 모범적 사례로 손꼽힐만하다. 9억여원의 예산을 들인 이번 공사의 핵심은 잔향시간(殘響時間, Reveberation Time)을 1.03초에서 1.42초로 늘린 것. 음향반사판을 합판에서 하드우드로 교체하면서 두께가 9㎜에서 50㎜로 늘어나 반사율도 높아졌다. 또 홈 형태의 흡음재 위주의 객석 벽체를 돌출형태의 반사재로 교체했고 바닥도 카페트를 뜯어내고 고무타일로 마감했다.
이번 공사를 맡은 환경음향연구소 김용국 소장은 "광주, 전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 공연장들의 RT는 1.0초 내외"라며 "음악전용홀이라면 RT를 더 늘려야 하지만 마이
크, 스피커도 사용하는 다목적홀임을 감안해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수준인 1.42초로 정했다"고 밝혔다. 공연장르에 따라 최적 RT는 연극이 1.2초, 오페라는 1.5초, 오케스트라가 2.0초다. 국내 공연장 중에는 세종문화회관이 1.3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2.0초다.
개관한 지 6년밖에 안된 데다 지금까지 지방 문예회관에서 음향 개보수 공사를 벌인 전례가 없어 반발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울산문예회관은 지난 6년간 공연실적을 분석, 클래식음악이 공연 장르의 54.6%를 차지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울산시와 시의회의 과감한 투자가, 객석수와 겉모양에만 연연할 뿐 정작 공연의 질에는 소홀해온 다른 지방 문예회관에 큰 자극을 주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Ⅵ. 맺음말
아트센터는 한국의 공연문화, 더 나아가서는 한국경제의 눈부신 발전에 대한 외형적 상징일지는 모르지만 내용면에서는 오히려 그 큰 덩치 때문에 예술의 섬세함과 독자적인 영역에 위협적인 존재로 변질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술가(연주자)와 청중(관객)을 연결해주는 것은 공연장이다. 관객을 입장시킨 다음 조명만 밝히는 것으로 극장의 임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관객과 연주자에게 봉사하는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지 않고서는 음악문화의 발전도 보장할 수 없다. 생연주의 감동을 함께 나누는 공연장에서 비로소 연주자와 관객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그 만남을 통해 음악이 비로소 존재론적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TV나 라디오, 비디오, 인터넷, 게임 등의 미디어들과 여가시간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음악, 더 나아가서는 공연예술이 진가를 발휘하는 것은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연주자와 청중이 만나 함께 만들어내는 라이브의 마술 때문이다. 공연장은 그런 무대의 마술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도록 모든 준비와 지원을 해야 한다. 공연장 문화에서 청중의 수준을 탓하기에 앞서 청중의 취향을 선도해가는 공연장 운영의 철학의 수립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 筆者 : 이장직 <중앙일보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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