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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그 하얀 속삭임

우상임의 음악여행(3) 자작나무, 그 하얀 속삭임

2007년 10월 31일 (수) 10:21:53 우상임 cafe.daum.net/ACCMPANISTWOO



러시아 로망스-자작나무
얼마 전 모스크바에서 걸려온 한 통의 국제전화.
첫 눈이 내렸다고. 온통 하얀 세상이라고.

첫 눈...지구 저 편에서 첫 눈이 내렸다는데 괜히 내 마음이 설렌다.

아직은 10월의 끝에 서 있는 내게, 하얀 기운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간다.
하얀 눈... 하얀 세상... 그리고 하얀 자작나무...

점점 쌀쌀해지는 날씨에 옷깃이 여며진다. 추위가 다가오면 더욱 돋보이는 나무가 자작나무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기 위함인지 수천 수만 그루가 서로 얼싸안고 숲을 이룬다.
러시아에서는 가을이면 황금색으로 물든 잎으로 황색 바다를 이루고, 눈처럼 하얀 껍질로 감싸인 자작나무가 하늘을 향해 죽죽 뻗어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에게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써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그 얘기를 듣고 난 후부터 산책길에서 만나는 자작나무의 하얀 표피가, 낙엽 되어 밟히는 바스락거림이, 내게는 한 겹 한 겹 하얗게 쏟아내는 속삭임으로 들렸던 기억이 있다.

러시아의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과 노래에서 자작나무를 자주 만나게 된다. 광활한 대지와 가도 가도 끝없는 자작나무숲길을... 오늘은 '자작나무'라는 러시아 로망스로 대신해본다.

러시아의 자작나무는 왜 그토록 바스락거리는지
흰 줄기의 자작나무는 왜 모든 것을 알고 있는지
바람에 몸을 기댄채 길가에 서서
나뭇잎을 애처롭게 떠나보내고 있어요.

길을 떠나 만나게 되는 광활함에 나는 기쁨을 느껴요.
아마도 이것이 삶의 여정에서 배우게 되는
전부인지도 모르죠.
왜 그토록 나뭇잎들이 슬픈 몸짓으로 떠다니며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는지

마음이 다시 뜨거워져요.
그리고 다시,또 다시 대답이 없어요.
자작나무를 떠나 온 작은 나뭇잎이 어깨위에 떨어졌어요.
그 나뭇잎도 나처럼 가지를 떠났지요.

사랑하는 여인이여,
오솔길 위에 잠깐 함께 앉아 있어요.
나는 돌아올 거예요.그러니 슬퍼하지 말아요.
그럴 필요 없어요.
노파가 작별의 손짓을 하면
내 뒤로 작은 문이 닫히겠지요.

왜 그토록 러시아의 자작나무는 바스락거리는지
왜 그토록 아코디온은 멋진 소리를 내는지
바람과도 같이 손가락이 건반 위를 날아다니더니
마침내... 떨어져요.

문득, 멋들어지게 시를 낭송할 줄 알았던 한 러시아 친구가 생각난다.

올 겨울에는 하얀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 꼿꼿한 자태로 서 있는 하얀 자작나무 한 그루와 꼭 마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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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임씨는 제주대학교음악학과와 경희대학교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러시아 성페테르부르크음악원 마스터클래스를 연수하고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음악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제주 MBC FM 모닝쇼 '우상임의 모닝 클래식'을 진행하고 있다. 한라대학교 음악과 출강하고 있으며 문화공간 자작나무숲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