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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와 문도령4

 자청비와 문도령(4)

-문도령 병풍뒤 자청비 숨겨 밀애(密愛)-

“문왕성 - '칼 선 다리위로 건너면 며느리 삼으마'”

집을 쫓겨난 자청비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걷고 있으려니까 산중에서 베틀소리가 들렸다. 천태산 마귀할망의 집이었다.
혼자 사는 이 할머니는 자청비를 양녀로 맞아들였다.
천상의 신이나 사람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고 품삯으로 살아가는 할머니였다.
자청비도 비단 짜는 일을 배워 할머니를 도왔다.
어느 날 보기 드물게 좋은 옷감이 들어왔다.
자청비가 누가 입을 옷이냐고 물어봤더니 하늘 옥황 문국성도령이 서수왕 딸에게 장가를 갈 때 입을 옷이라는 것이다.
슬픔을 참지 못한 자청비는 눈물을 흘리며 옷감 한쪽에 「자청비」라는 이름 석자를 새겨 올려보냈다.
옥황에서 이를 받아본 문국성이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자청비를 생각해내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 옷은 누가 만든 것이요』
『우리 수양딸이 만들었소』
『내가 좀 볼 수 있겠소』
마귀할망이 기뻐서 자청비에게 말했다.
『문도령보다 더 좋은 사윗감이 있으랴. 주안상을 봐 올 테니 그 동안 잘 대접하고 있어라』
마귀할망이 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마을로 내려간 사이에 참지 못한 문도령이 자청비 방 앞으로 갔다.
『자청낭자, 오랜만이요』
『누구십니까』
『문국성이요』
『문도령이 틀림없으면 문틈으로 손가락을 넣어보시오』
문국성이 문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자 자청비는 바늘로 손가락 끝을 찔러버렸다.
손끝이 찔려 피가 나자 문국성은 화를 내면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잠시후 마귀할망이 돌아왔으나 문국성은 이미 가버린 다음이었다.
『자청비야, 문도령이 어데 갔느냐』
『내 방으로 왔기에 귀신인지 생인(生人)인지, 문도령인지 도적인지 몰라 바늘코로 찔렀더니 가버렸습니다』
『부모에게 왜 쫓겨났는지 알만하다. 어서 나가라, 보기 싫다』
마귀할망에게서도 쫓겨난 자청비는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절로 들어갔다.
시주를 받으러 마을로 내려오는데 아리따운 아가씨들이 수심에 차 앉아있었다.
『무슨 일로 걱정을 하고 있습니까』
『옥황선녀들이온데 문도령이 상사병이 들어 자청비가 먹는 물을 먹고 싶어 떠오라고 하오나 물을 찾을 수 없어 울고 있습니다』
『내가 가리켜주면 같이 데려다 주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연화못을 가리켜준 자청비는 선녀들을 따라 하늘위로 올라갔다.
문국성의 집 앞에가 시주를 청하자 정하님(여자 하인)이 나와 쌀을 내줬다.
일부러 땅에 쌀을 흘린 자청비가 쌀알을 줍는 체하며 집안을 살피려니 문도령이 뒤뜰 별충당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밤이 되자 자청비는 별충당 담밖의 팽나무위로 올라갔다.
문국성이 달구경을 나왔다가 무심코 시구를 읊었다.
『저 달이 곱기도 곱다마는 자청비만큼 곱지는 않구나』
자청비가 댓귀를 했다.
『달아 밝은 달아. 저 달빛은 문도령도 비추고 나도 비추건마는 이 내 몸은 문도령을 모르고 문도령은 나를 모르는구나』
문도령이 나와봤더니 나무 위에 웬 중이 앉아있었다.
『고약한 중이로고』
중을 끌어내려 행장을 검사하는데 시주자루에서 삼단 같은 머리채가 떨어졌다.
그제야 자청비임을 알아 본 문국성이 자청비를 번쩍 안아들여 방으로 들어갔다.
병풍 뒤에 자청비를 숨겨놓은 문국성은 날마다 부모 모른 사랑을 했다.
문도령이 갑자기 밥을 많이 먹는 것을 이상히 여긴 정하님이 창구멍으로 들여봤더니 문도령 이불 속에 한 여자가 같이 있는게 보였다.
정하님이 마님에게 고했다.
『문도령이 요즘 밥을 너무 많이 먹어 방안을 봤더니 몸은 하나고 얼굴은 둘입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 문도령을 불러라』
어머니에게 불려간 문국성은 자청비가 일러준 대로 말했다.
『어머니, 헌 옷이 좋습니까 새 옷이 좋습니까』
『새 옷이 보기는 좋다마는 헌 옷이 편하다』
『헌 간장이 맛있습니까 묵은 간장이 맛있습니까』
『묵은 간장이 맛있다』
『헌 사람이 좋습니까 새 사람이 좋습니까』
『정이 든 사람이 좋은 법이다』
『그러면 나 서수왕 딸에게 장가가지 않겠습니다』
문도령이 다른 아가씨와 정을 통하는 사실이 밝혀지자 난리가 났다.
문왕성은 며느리를 고르기 위해 시험을 치르기로 했다.
마당에 넓은 구덩이를 파고 숯불을 가득 담았다.
그 위에 칼 선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를 건너면 내 며느리로 삼으마』
숯불이 타올라 칼날이 벌겋게 달아오르자 서수왕 따님아기는 벌벌 떨다가 『죽어도 못하겠다』고 주저앉았다.
칼 선 다리 앞으로 나간 자청비는 간절히 기원을 했다.
『명천(明天)같은 하늘님아, 나를 살리려거든 비를 내려주고 죄가 있으면 광풍을 불러주십시오』
자청비가 눈을 감고 칼 위로 올라서려고 하자 맑은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고 장대 같은 소낙비가 내렸다.
숯불은 꺼지고 칼날도 식었다.
자청비는 물명주 속옷에 대홍대단(비단) 검은 치마에 코잽이 버선을 신고 칼날 위에 올라섰다.
열두 다리를 왔다갔다하다가 마지막 다리를 내려서려는데 뒤꿈치를 베이고 말았다.
아무도 몰래 치마자락으로 피를 닦은 자청비가 문왕성앞에 섰다.
『내 며느리가 분명하다마는 웬 날 핏내가 나느냐』
『인간세상의 여성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부정하게 마련입니다』(이때부터 여자들은 매달 한차례씩 달거리를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