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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와 문도령(3)
“머리에 이나 잡고 같이 자자”
- “자청비 무릎베고 잠든 하인 비녀로 죽여”
짐을 푼 정수남은 소금을 잔뜩 넣은 범벅은 자청비 앞으로 갖다놓고 소금을 넣지 않고 만든 범벅은 자기가 가져가서 먹었다.
자청비는 범벅을 먹으려 했으나 너무 짜서 먹기가 힘들었다.
『정수남아 왜 따로 밥을 먹느냐. 같이 먹자』
『상전님 곁에서 밥을 먹다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부부간인 줄 압니다』
『그러면 너 먹는 밥만이라도 좀 다오』
『상전이 먹던 밥은 종이 먹지만 종이 먹던 밥은 개나 먹는 법입니다』
할 수 없이 짠 밥을 먹은 자청비는 목이 몹시 말랐다.
물을 찾아서 먹으려고 할 때마다 정수남이 못 먹게 말렸다.
『이 물은 소·말이나 먹는 물입니다』
『그 물은 먹으면 손에 손병, 발에 발병 나는 물입니다』
『저 물은 까마귀 몸 감은 물입니다』
한참 물을 찾다가 진흙탕 연못물이 나타나자 정수남이 말했다.
『이 물은 먹어도 됩니다마는 총각(總角) 죽은 물이라 옷을 다 벗고 먹어야 합니다』
윗도리·아랫도리를 홀딱 벗은 정수남이 엎드려서 소 물먹듯이 꿀떡꿀떡 물을 먹었다.
자청비도 옷을 벗고 알몸으로 엎드렸다.
그 사이에 자청비의 옷을 나뭇가지 위에 감춘 정수남이 돌멩이를 주워 자청비앞으로 퐁당퐁당 던지며 말했다.
『상전님아, 물 아래를 봅서. 물살이 지니 얼마나 곱습니까. 이게 문국성 문도령 노념놀이 하는 것입니다』
정수남이 돌멩이를 던지며 장난을 치자 그때서야 자청비는 속은 줄을 알았다.
자청비의 옷을 다 벗겨놓은 정수남은 못하는 짓이 없었다.
『상전님 아기씨, 은결같은 손목이나 잡아봅시다』
『나 눕는 방에 금봉채(부채)가 있으니 가서 잡아봐라. 나 손 잡는 것보다 더 좋다』
『젖통이나 만져봅시다』
『나 젖 만지느니 내 방에 연적이나 만져봐라』
『입이나 맞춰보기 어떻습니까』
『내 방에 꿀단지가 있느니라. 가서 빨아보면 나 입 맞춘 것보다 더 좋으리』
『같이 누워나 보져』
『내 방에 가 봐라. 안 자리에 능화자리, 바깥자리에 화문석, 머리맡에 한서(漢書)병풍, 발치에 족자병풍 휘휘 칭칭 둘러치고 비단이불 덮고 잣베개 베고 누우면 나와 눕는 것보다 훨씬 좋다』
자청비와 정수남이 실랑이를 하는 새에 해가 떨어졌다.
날은 어둡고 추워져서 견디기가 힘들어지자 자청비가 말했다.
『정수남아, 그냥 잘 수가 있느냐. 움막이라도 지어봐라』
같이 자자는 말로 알아들은 정수남은 귀가 찢어지도록 좋아하고 허겁지겁 막을 지었다.
동쪽의 나무는 서쪽으로, 서쪽의 나무는 남쪽으로, 남쪽의 나무는 북쪽으로, 북쪽의 나무는 동쪽으로 휘어 얼기설기 집을 지었다.
『정이 어신 정수남아 집에 구멍이 숭숭 뚫렸구나. 종과 주인이 같이 자다가 이 구멍으로 하느님이 보면 노하지 않겠느냐. 구멍이나 막고 자자』
정수남은 부지런히 밖에 나가 억새·띠를 긁어모아다 구멍을 막기 시작했다.
정수남이 밖에서 풀로 구멍을 막을 때마다 자청비는 안에서 하나씩 빼냈다.
다섯 구멍을 막으면 네 구멍을 빼고 두 구멍을 막으면 세 구멍을 뺐다.
정수남이는 막고 자청비는 빼는 사이에 밤이 다 샜다.
날이 밝도록 막다가 지친 정수남이 자청비의 꾀를 알아채고 길길이 날뛰었다.
『정수남아 같이 자도 좋다마는 머리에 이(蝨)나 잡고 같이 자자』
금방 기분이 좋아진 정수남은 자청비의 은같은 무릎 위에 머리를 베고 누웠다.
일을 많이 해 피곤했던 정수남은 자청비가 늑장을 부리며 이를 잡는 새에 잠이 들고 말았다.
자청비는 머리에서 비녀를 빼 정수남의 왼쪽 귀에서 오른쪽 귀까지 깊이 찔렀다.
귀에서 피를 흘린 정수남이 그대로 죽고 말았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자청비가 부모에게 전후사정을 말하니 김진국과 조정국은 일하는 머슴을 죽인 것만 탓했다.
『기집년이 잘도 났구나. 사람을 죽이다니. 네 년은 시집가면 그만이지만 그 종은 살려두면 우리 두 늙은이 먹을 일은 해 준다』
『종만큼 일을 못하랴』
서러운 자청비는 정수남이 대신 일을 하려고 밭으로 나섰다.
하루종일 밭을 일구고 좁씨 석 섬을 갈아 파종을 하고 왔는데 그 날은 마침 멸망(滅亡)일이었다.
『시키지 않은 일을 왜 했느냐. 멸망일에 씨를 뿌렸으니 곡식이 될 리가 있느냐. 모두 거둬와라』
또 부모에게 야단을 맞은 자청비가 좁씨를 다시 거둬다가 술을 만드는데 한 방울이 부족했다.
좁씨 한 방울을 주우려고 다시 밭에 나가봤더니 개미가 물어가고 있었다.
개미에게 좁쌀을 뺏으려고 했으나 겨울양식을 마련하던 개미가 요리조리 피하며 내놓지를 않았다.
자청비가 갖고 갔던 종나무 회초리로 와싹 후려치니 개미 잔등이 부러져 항글거렸다. (이때부터 개미들은 허리가 가늘다고 한다)
겨우 좁쌀을 채워 술을 만들었으나 이 일은 오히려 부모의 화만 돋웠다.
『어제 좁씨 석 섬을 뿌렸다가 오늘 다 주워 올 수가 있느냐. 귀신이 옴붙은 년. 집 나가서 네 명대로 살아라』
자청비는 결국 집을 쫓겨나고 말았다.
다음편에 계속....

◇그림=김재경(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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