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내용을 읽기전에..
남선비의 이야기는 무가(巫家)에서 「문전본풀이」로 구전되고 있다.
문전본풀이는 집을 지키는 신이라는
문전신(門前神)에 대한 내력담으로서 남선비의 막내 아들인 녹두생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주에서는 이 문전신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
기일 제사가 있을 때마다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기 전에 반드시 문전제를 먼저 지낸다.
매해 정초에는 또 집집마다 이 문전신을 위해
「문전철갈이」라는 신년과세의식을 치르곤 하는 게 보통이었다.
남선비의 눈이 멀었다는 것은 인식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육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남선비는 사실상 노일자대를 보는 순간 눈이 멀었다.
단지 「나쁜 음식을 먹여 눈이 멀었다」는 것은 정신적인 현상을
육체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남선비는 노일자대가 아내를 죽여버려로 아내의 목소리와 노일자대의 목소리를 구별하지 못한다.
곡식을 사러 갔다가 여인에게 혹하여 옷까지 다 팔아먹는 이야기는 우리나라 고전소설중 하나인 이춘풍전을 연상시킨다.
평양에 장사를
하러 갔던 이춘풍은 그 유명한 평양기생에게 빠져 돈을 탕진하고 드디어는 기생집의 하인노릇을 하게 된다.
결국 유능한 아내의 활약으로
개과천선하게 되는데 기본적인 구도는 남선비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춘풍전이 조선시대 후기의 타락한 사회상을 고발하는 작품이라면
남선비의 이야기는 가정소설적이다.
제주시 아라2동 속칭 「걸머리」마을에서는 주민들이 남선비가 이 마을에 살다가 신이 됐다고 하여 남선비와
여산부인을 모시는 장소(알새미당)를 따로 두고 제를 지내왔었다고 한다.
배까지 다 팔아먹고 눈까지 멀어
- 곡식사러간 남선비 주막여인(女人)에 홀딱 빠져
남선마을에 사는 남선비와 여산부인 사이에는 아들 일곱형제가 있었다.
두 내외가 부지런히 일했지만 흉년이 겹치는데다 식솔이 너무 많아 끼니 잇기가 힘들었다.
식량은 떨어지고 아이들은 공부를 시키지 못하는 통에 늘 책을 사달라고 울었다.
하루는 여산부인이 명주바지에 좋은 의상을 마련하고 돈 백냥·은백냥을 남선비 앞으로 내놨다.
『이게 왠 돈이요』
『양태(갓양태)를 만들어 팔아 모아 둔 돈입니다. 먹을 게 다 떨어졌으니 곡식과 책을 사오소서』
남선비는 테우를 만들어 타고 남선고을을 떠나 오동(梧桐)나라로 곡식을 사러 갔?
선창에 배를 대니 웬 고운 여인이 쳐다보고 있었다.
주막집 구일의 딸 노일자대였다.
『이 동네에 곡식 팔거나 있습니까』
『나를 따라 오소서』
여인이 앞서 가는데 뒷모습이 교태로와 남선비는 그만 여인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노일자대가 따뜻한 방에 모셔 놓고 온갖 애교를 다 떠니 남선비는 고향생각은 잊어버렸다.
술을 마시며 돈을 다 쓰니 쓰고 간 갓, 두루마기, 명주도포는 물론 타고 간 배까지 다 팔아먹었다.
돈이 떨어지자 쫓겨난 남선비는 방을 빌리지도 못해 수수대를 잘라 기둥을 세우고 나무 돌쩌귀에 거적문을 단 초막집을 지어 목숨만 연명하고 살았다.
노일자대가 매일 체(겨)죽만 쒀주니 그것을 먹고 눈까지 멀고 말았다.
고향에서는 여산부인이 삼년을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지를 않아 매일 바다에 나가 기도를 했다.
이제는 모두 자란 일곱형제가 어머니에게 짚신을 만들어 드렸는데 하루 저녁에 일곱켤레씩 신이 닳고 다음날에는 다시 맨 발로 다녔다.
『우리 어머니가 밤행(외도)를 하는게 아닐까』
막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의심스러워하게 된 형제들이 그 날은 밤에 어머니를 몰래 따라 나갔다.
어머니는 돌투성이 바닷가를 밤새 헤메느라 짚신 일곱켤레가 다 헐었다.
『죽었거든 의복이나 머리나 걸려 올라오라』
줄에 얼레기(큰 빗)를 달아 매 바다에 던지며 기도를 했으나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다. 바다에서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이를 본 형제들이 말했다.
『어머니, 그러지 말고 우리가 아버지를 찾아 가 보겠습니다』
『나하나 죽는 건 그만이지만 그러다가 배가 물에 빠져 너희 칠형제가 모두 죽으면 누가 대를 이으랴. 내가 가마』
일곱형제가 한라산에 들어 가서 큰 나무 일곱동을 잘라 왔다.
나무를 잘라 묶어 테우를 만들고 동남풍이 불 때를 기다려 배를 띄웠다.
바람을 타고 정처없이 가다보니 멀리 선창이 보였다.
이제는 남의 배가 돼 버린 남선비의 배도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테우는 좀이 먹고 낡아 있었다.
남편이 죽은 것으로 생각한 여산부인이 길가에 앉아서 울고 있으려니 웬 여자아이의 노 랫소리가 들렸다.
『요 새, 저 새, 너무 약은 체 하지 마라. 똑똑한 남선비깐에도 노일자대에게 속아 전배 독선(船)다 팔아먹고 체죽(겨죽)단지에 숟가락 걸치고 말똥으로 불켜서 살며 죽을 날만 기다린다. 요 새, 저 새 약은 체 마라. 후워』
기장밭에서 새를 쫓는 여자아이가 자꾸만 곡식밭으로 날아드는 새떼를 쫓기 위해 주막집에만 드나들다 신세 망친 남선비를 빗대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게 아닌가.
『얘야, 그 노래 한 번만 더 들려다오』
『아고 주인이 알면 노래만 부른다고 욕들어요』
『구슬·댕기 줄터이니 한 번만 더 불러 봐라』
『남선비가 돈 다 쓰고 비슬이 초막으로 쫓겨나 체죽이나 먹는 신세가 됐구나』
여산부인이 물어 물어 남선비의 처소를 찾아가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남편이 초라한 행색으로 앉아있었다.
『피곤해서 그러니 좀 쉬었다 가겠습니다』
『부인이 알면 큰 일 나요』
『부엌이라도 빌려주면 점심이나 지어 먹고 가겠습니다』
여산부인이 부엌에 가보니 솥에는 체가루가 가득 눌어 있었다.
솥을 씻어 쌀밥을 짓고 옥돔도 굽고 아홉가지 해물 젓갈로 상을 차려 남선비에게 갖다줬다.
한 두번 사양하다가 상을 받은 남선비가 밥을 한숟갈 뜨니 옛날 밥맛이요, 옛날 숟가락 감촉이 들었다.
『아고 나 옛날 먹던 밥맛이로구나』
『밥은 알고 사람은 모릅니까. 여산부인입니다』
그 때야 부인을 알아 본 남선비가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때 밖에 갔다가 돌아와 얘기를 듣던 노일자대는 푸짐한 밥상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고 형님 왔습니까』 속셈이 있는 노일자대가 여산부인에게 깎듯이 형님예우를 했다.
남선비와 여산부인이 고향으로 간다고 하니 노일자대도 따라 가겠다고 나섰다.
노일자대에게 구박만 받았던 남선비이지만 같이 가겠다는 걸 말리지는 못했다. 선창으로 가던 중 노일자대가 목욕이나 하고 가자고 제안하여 연화못으로 두 내외를 데려갔다.
남선비는 남탕으로 보내놓고 여탕에 여산부인과 같이 간 노일자대는 등을 밀어주는 척 하다가 등을 떠밀어 수장시키고 여산부인의 옷을 입고 여산부인의 머리를 하고 나왔다.
『노일자대는 야단을 쳐서 고향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그 못된 년 잘했소』
눈 먼 남선비는 노일자대가 거짓말하는 줄도 모르고 고향으로 가는 배를 띄웠다.
'기타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주의 설화시리즈2(자청비와 문도령4) (0) | 2006.04.05 |
---|---|
[스크랩] 제주의 설화시리즈2(자청비와 문도령3) (0) | 2006.04.05 |
자청비와 문도령4 (0) | 2006.04.05 |
제주설화-여우물 (0) | 2006.04.05 |
풍수설화 -풍수설화로 본 외세(육지)와 제주민중간의 갈등 (0) | 2006.04.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