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무속신화 시리즈 그 일곱번째 이야기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제주도 무가 '이공본풀이'를 저본으로 삼은 '한락궁이'입니다.
한락궁이는 서천꽃밭의 생명의 꽃을 관장하는 신이지요. '신산만산할락궁이'로 불려지기도 합니다. 아래의 초안은 동화작가 엄혜숙씨의 동화화 작업을
거쳐 <한겨레 옛이야기> 제5권에 수록되었습니다.
한락궁이 - 서천꽃밭의 꽃대왕
먼 옛날 시골 한 마을에 아주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이웃에 살고 있었다. 두 집 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이상하게 한 집에는 재산이 모이지 않고 한 집에만 재산이 쌓였다. 비록 가진 재산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의 우정을 변치 않고 의좋게 지냈다.
그런데 두 집에는 공통된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늦도록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걱정을 하던 끝에 명산대천을 찾아가 신령님과 부처님에게 자손을 빌기로 하였다. 각자 공양을 올리는데, 부잣집에서는 황금을 준비해 성대하게 올렸지만 가난한 집은 올릴 것이 마땅치 않아 걱정이었다. 고민 끝에 그 집에서는 제사용으로 틈틈히 모아 두었던 얼마 되지 않는 쌀을 꺼내어 손으로 뉘를 고르고 한 톨 한 톨 세심히 씻으며 아침이슬을 맞히는 등 갖은 정성을 들여 신령님께 올렸다.
그러한 정성이 통해서인지 얼마 후에 두 집 안주인에게 각각 태기가 있었다. 한날 한시에 아이를 낳았는데, 가난한 집 아이는 아들이고 부잣집 아이는 딸이었다. 남자 아이는 원강도령, 여자 아이는 원강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두 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났는데, 원강도령에게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감정 표현이 얼마나 풍부한지, 원강도령이 한번 울음을 울면 사람들이 다들 슬퍼지고, 그가 한번 웃으면 다들 마음이 밝아졌다. 그가 한번 미워하는 눈길을 보내면 그만 섬찟해지고, 사랑스런 눈길을 보내면 이끌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원강도령은 한날 한시에 태어난 원강암이와 친하게 지냈는데, 나이가 들면서 원강암이를 보는 원강도령의 눈길이 점차 그윽해졌다. 그 눈길에 끌려 원강암이는 원강도령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 사실을 눈치챈 두 집 가장이 만나 혼인을 약속하였다.
"한날 한시에 난 것도 신기한데, 자기네들끼리도 좋아하는 눈치니..."
"아마도 천생 연분인가 보네그려."
원강암이의 어머니가 딸을 가난한 집에 시집보내기를 내켜하지 않았으나, 가장은 거기 개의치 않았다.
"재산이란 금방 있다가도 없는 것, 그런 소리 마시구려."
원강도령과 원강암이는 양가 부모와 동네 사람들의 축복 속에 혼인을 치뤘다. (원강도령을 짝사랑하던 처녀들이 몰래 눈물을 지었다던가...) 그리고 단꿈 같은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부유하게 살던 원강암이는 가난한 살림이 처음에 무척 힘들었으나, 살아보니 불편하긴 해도 못살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갈수록 새롭게 솟아나는 남편과의 정이 큰 힘이 됐다.
그런데 꿈같은 세월도 잠시, 결혼한 지 삼년이 되던 어느 날 원강도령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늘나라 사자가 나타나 말을 전한다.
"원강도령, 도령은 본래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죄를 받아서 이세상에 내려왔는데, 이제 죄가 다했다오. 옥황상제께서 그대를 서천꽃밭 감관을 삼으시려 하니 날이 밝는 대로 행장을 꾸려 나서도록 하오. 동구밖에서 기다리겠오."
깜짝 놀라 깼는데, 꿈이 생시처럼 생생하였다. 그 꿈얘기를 아내 원강암이에게 하니 아내가 놀라며 하는 말,
"나도 같은 꿈을 꾸었어요. 남편이 이제 서천꽃밭으로 떠나야 한다면서..."
둘이 의아해하며 날을 보내자 다시 같은 꿈이 이틀 사흘 계속 꾸어진다.
"원강도령, 상제께서 특별히 그대를 산 몸으로 부르셨거늘, 어서 응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고 벌을 받게 될 것이오. 내일은 꼭 떠나야 하니 반드시 동구밖으로 나오도록 하오."
원강도령은 어쩔수없이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갈 수 없었다. 아내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 뒤를 따르겠다고 하였다. 문제는 원강암이의 몸이었다. 아이를 가져 산달을 두어 달밖에 남겨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서로 헤어져서는 살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간단히 짐을 챙겨서 함께 길을 나섰다. 원강도령의 아내가 따라온 것을 본 하늘나라 사자가 혀를 끌끌 찼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냥 동행하도록 하였다.
사자를 따라 서천꽃밭을 향하는데 그 길이 한량없었다. 사자는 축지법을 쓰는지 힘든 기색이 없는데 원강도령과 원강암이는 힘들기 그지 없었다. 특히 임신한 몸의 원강암이가 겪는 고통이 헤아릴 수 없었다. 원강도령이 부축도 하고 업어주기도 했지만, 무한정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사자에게 얼마를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아마 석달은 걸리리라고 한다. 이렇게 힘들게 걸어서 가야만 하느냐고 물으니, 뜻하지 않은 동행이 있어 어쩔수없는 일이라고 한다. 원강암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힘들여 길을 간 지 한 달 정도 된 날, 인가도 없는 산중을 며칠째 힘들여 걸었을 때였다. 원강암이가 그만 자리에 퍼질러 앉더니 일어날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 말한다.
"여보, 나는 더이상 갈 만한 기력이 없으니 당신 혼자 가세요."
"그게 무슨 말이요? 얼마나 고생하면서 예까지 왔는데... 어서 힘을 내구려. 여기 이렇게 앉아 있다가는 늑대밥이 될 거요."
그러면서 원강암이를 들쳐업는다. 그리고 사자에게 묻는다.
"도대체 얼마나 가야 인가가 있단 말입니까?"
"글쎄, 몇 시간만 더 가면 아마 자현장자 집이 나올게요."
그 말에 힘을 얻어 걷기를 두어 시간, 원강도령도 이제 더이상은 버틸 만한 기력이 없어졌을 무렵, 개우는 소리와 닭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마을과 높은 담장이 둘러쳐진 덩그란 기와집. 바로 자현장자의 집이었다. 자현장자는 해동국과 서역국 사이 나라 없는 땅에서 큰 마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원강도령이 말했다.
"이제 됐어. 이 집에서 쉬어 갑시다."
이때 죽은 듯이 업혀 있던 원강암이가 원강도령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는 내려서 남편에게 말한다.
"낭군님, 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청이 있어요."
"말해 보구려."
"서천꽃밭에 이르려면 앞으로 남은 길이 수만리, 저와 함께는 도저히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저를 이 집에 두고 가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당신 없이는 갈 수 없소."
"그러다가는 우리 둘, 아기까지 셋이 다 죽고 맙니다."
한동안의 설전. 끝끝내 우기는 원강암이.
"그나저나 이 집에서 당신을 받아줄 리도 만무잖소."
"그냥은 안 받아 주겠죠. 그러나 종살이를 하겠다면 받아줄 겁니다."
"종살이라니, 무슨 그런 당치않은 말을..."
그러나 원강암이의 태도는 단호했다. 자신을 그 집에 맡기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그냥 쓰러져 죽겠다는 것이었다. 원강도령은 한 사발 눈물을 쏟은 후에 어쩔 수 없이 아내의 청을 받아들였다.
사자와는 다음날 아침 만나기로 하고 원강도령은 아내와 함께 자현장자의 집에 들어갔다. 원강암이 친정은 비교도 안 될 저도의 큰 부잣집이었다. 집이 수백칸에 종이 백명이 넘었다. 원강도령은 주인을 찾아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종이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만두구려. 이 집은 손님을 안 받는 집이오. 주인님의 엄명이라오."
"그러나 저러나 사정이 있으니 제발 한번만 주인님을 뵙게 해주시오."
원강도령이 간곡하개 호소하자 냉정하기만 하던 종이 자기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겨나서 부부를 이끌고 자현장자에게 가서 아뢴다. 자현장자가 방문을 열고서 거만하게 말한다.
"어떤 자가 무슨 일로 나를 보겠다는 건가?"
"장자님, 길 가던 나그네입니다. 간곡히 청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원강도령. 그러자 원강암이가 말한다.
"저를 이 댁 종으로 받아 주십시오. 지성껏 일하겠습니다."
한번 훑어보는 자현장자. 마침 그 방에는 그의 세 딸이 들어와 있었다.
"얘들아, 니들 보기에 어떠냐?"
첫째 딸이 말한다.
"약해 빠져서 일하기 틀렸어요. 그만두세요."
둘째 딸,
"우리 집에 종이 수두룩하잖아요. 종들 먹는 밥이 얼만데요. 그만두세요."
그러자 셋째 딸이 말한다.
"글쎄, 일을 시켜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잖아요? 일단 받아들이세요."
자현장자가 다시 원강암이를 훑어보고서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하였다.
"좋소. 내 특별히 받아들여 주리다."
잠시 후 저녁상이 나오는데 원강도령은 사랑방으로 불러 손님상을 차려주고는 종이 된 원강암이에게는 부엌 구석에 식은 밥을 물에 말아서 준다. 원강도령이 눈물을 세번 흘리고서 자현장자에게 말했다.
"이 마을 풍습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마을 풍습은 서로 이별할 때 상을 차려 마주앉아 먹게 하는 법입니다."
그 말에 불쌍한 생각이 들었는지 원강암이를 불러 원강도령과 함께 식사를 하게 하였다. 국묵을 먹는지 눈물을 삼키는지... 그날 밤 다시 원강도령은 사랑채로 들게 하고 원강암이는 종들이 자는 행랑채로 보내려 한다. 그러자 원강도령이 말했다.
"이곳 풍속은 모르나, 우리 풍속은 비록 종이 되었어도 가족이 이별할 때는 한방에서 거처하게 한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 말과 함께 원강도령이 자현장자를 쏘아보니 그 눈빛에 놀란 장자가 움찔하면서 말한다.
"알았소. 내 특별히 그렇게 해주지."
마지막, 이별의 밤. 나란히 앉아서 한참을 벽만 보고 있다가 원강암이가 말하였다.
"낭군님, 제 걱정 마시고 하늘에서 맡기신 일을 성심껏 하세요. 뱃속의 아이가 나오면 제가 부끄럽지 않게 잘 키워서 낭군님께 보내겠습니다. 그나저나 가기 전에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 이름이나 지어 주세요."
"아이 이름이라... 만일 딸을 낳거든 한락데기라고 하고 아들을 낳거든 한락궁이라고 하구려."
"낭군님,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증표나 하나 주고 가세요."
그 말에 원강도령은 품 속에서 상동나무 빗을 꺼내어 두동강을 냈다. 그리고 서로 한 동강씩을 나누어 가졌다. 그런 다음 둘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았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예요."
"그럼 그렇구말구."
다음날 원강도령은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길을 떠났고, 원강암이는 종살이를 시작했다. 아이를 출산할 날이 임박했던지라 자현장자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고 간단한 허드렛일을 시켰다. 장자는 가끔 가다 원강암이를 보면 힘들지 않느냐고 하면서 뜻 모를 눈웃음을 짓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산통이 찾아와 원강암이는 오랜 산고 끝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맑고 구슬픈지 다들 뜻아니게 눈물이 맺히려고 할 정도였다. 원강암이는 남편이 말한대로 아이의 이름을 한락궁이라고 지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산후 조리도 채 끝나기 전이었다. 하루는 원강암이가 혼자 부엌에서 아이에게 젖을 주고 있는데 자현장자가 찾아왔다. 그리고 은근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산후 조리는 잘 됐느냐?"
원강암이가 그 눈빛이 뭔가 불길하다고 느끼는 순간, 장자가 뜻밖의 말을 꺼낸다.
"그래, 힘들지? 그러지 말고, 네가 호강하는 길이 있다. 이제 종노릇은 그만두고 내 첩이 돼서 나와 함께 살자꾸나. 그러면 이 집이 다 네 집이 될 것이야."
원강암이는 그 말이 청천벽력과 같았다. 자현장자가 자신을 종으로 받아준 것도, 자신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아니 그게 무슨... 저는 비록 종이지만 엄연히 남편이 있는 몸입니다. 그렇게는 할 수는 없습니다."
"뭐라구? 허허 이런 고얀. 내가 기껏 저를 생각해서 은혜를 베풀려 했거늘..."
자현장자는 화를 내고서 부엌에서 나가 버렸다.
그 다음날부터 원강암이에게 온갖 힘든 일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하는 집안일은 물론이고 쟁기로 밭을 가는 일, 나뭇짐을 져오는 일, 장작을 패는 일 등등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이 쉴새없이 이어졌다. 산후 조리도 못한 몸에 도저히 견디기 힘든 중노동이었다. 원강암이의 몸은 아주 수척해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자현장자가 살짝 원강암이를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 것이었다.
"어때, 그새 생각 좀 해봤느냐? 괜한 고집 피우지 말고 나랑 함께 살자꾸나. 안 그러면 앞으로 며칠도 못 버티고 쓰러지고 말 걸."
원강암이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다. 까짓것 그대로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핏덩어리 어린 아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원강암이는 임시방편으로 다음과 같이 둘러댔다.
"좋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을 모시고 살죠.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우리 마을 퐁속은 아이가 태어난 후 노래도 부르고 죽마를 타고 놀며 지게도 지고 밭도 갈게 되면 그때 가서 재가를 하게 돼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이 타서 저도 주인님도 다 죽어 버리게 된답니다. 아이가 클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자현장자는 찜찜했으나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락궁이는 자라나면서 아버지 원강도령을 꼭 빼닮았다. 용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그랬다. 감정 표현이 어찌 풍부한지 한락궁이가 웃으면 다들 마음이 밝아지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다들 우울해졌다. 그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사람을 보면 다 거기 빨려드는 것인데, 주변 하인들이 다 그랬다. 한락궁이는 종들이 힘든 일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불쌍하고 동정하는 눈으로 그들을 보는데 그러면 다들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야 어땠으랴. 한락궁이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고맙고 불쌍하고 슬픈 수많은 감정이 뒤얽히는 것이었다. 한락궁이를 보는 어머니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락궁이는 유난히 자현장자와 그 가족들을 미워했다. 자기네들만 편하게 배불리 먹고 살면서 종들을 맘대로 부려먹는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서 자현장자를 볼 때마다 증오심 서린 눈으로 쏘아보는데, 그 눈빛과 만나면 장자는 등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그리고 나서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고, 저 녀석을 그냥...'
한락궁이가 일곱살, 여덟살이 되자 자현장자는 온갖 힘든 일들을 시키기 시작했다. 새끼를 꼬고 나무를 해오는 일 따위를 시키는데, 도저히 아이가 감당하지 못할 많은 분량을 명하였다. 한락궁이가 힘들여 책임량을 마치면 일이 부실하다고 트집을 잡아 밥을 굶기기 일쑤였다.
하루는 자현장자가 한락궁이에게 좁쌀 한 가마를 주면서 명했다.
"저 산기슭에 가서 나무를 베어내 밭을 만들고 거기다가 이 씨를 뿌리고 와라. 오늘 중에 끝내야 한다."
한락궁이는 나무를 베는 데만 하루를 거진 다 쓰고 지쳐서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큰 산돼지 두 마리가 나타나 싸우면서 나무 등걸들을 들이받아 다 뽑아내고 땅을 헤치는 것이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니 순식간에 밭이 일구어졌다. 한락궁이는 기뻐하면서 그 밭에 좁쌀을 다 뿌리고서 돌아왔다.
한락궁이가 일을 끝냈다는 말을 들은 자현장자가 놀래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니 과연 그러했다. 그러자 장자는 다시 한락궁이에게 말했다.
"어허, 오늘은 씨 뿌릴 날이 아닌데 잘못 뿌렸구나. 가서 다시 다 모아가지고 오너라."
한락궁이는 짐짓 딴전을 펴는 장자를 한 번 쏘아보고는 밭 일군 데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사이에 개미떼들이 좁쌀 씨를 일일히 짊어져 옮겨서 한 군데에 다 모아놓은 것이었다. 한락궁이는 그 좁쌀을 가마니에 넣어서 돌아왔다. 자현장자가 놀랐음은 물론이다.
'흠, 보통 녀석이 아니야. 저대로 뒀다가는 후환이 있을 거야.'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락궁이 나이 열 살이 되었다. 기회만 벼르고 있던 자현장자는 이제 한락궁이가 다 컸다면서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일을 시켰다. 열 살 아이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으나, 한락궁이는 오기로써 그 일을 해냈다. 그 모습을 본 자현장자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몰래 원강암이를 불렀다.
"자, 보거라. 이제 네 아들이 다 커서 밭가는 일도 능히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이제 약속대로 내 첩이 되는 거다."
드디어 올 것이 왔음을 안 원강암이가 말했다.
"얼마간만 여유를 주세요. 아이도 타일러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있으니요."
원강암이가 간청 끝에 얻은 말미는 단 사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밤 원강암이는 한락궁이를 불렀다. 그리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얘야. 이제 너도 다 컸으니, 네 아버지에 대해서 알려줄 때가
되었다. 그 동안 무척이나 궁금했겠지? 그래, 네 아버지는 보통 분이 아니시다. 저 하늘나라에서 오신 분으로 지금은 저승세계 서천꽃밭에서 벼슬을 하고 계신 훌륭한 분이시다. 네 아버지를 찾아 떠나거라."
그러면서 원강암이는 원강도령에게서 받은 쪼개진 빗을 한락궁이에게 전해 주었다. 순간 한락궁이의 눈이 빛났다.
"어머니, 꼭 아버지를 찾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떠나면 어머니는..."
"내 걱정은 말거라. 네 할일은 아버지를 찾는 일이야."
그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한락궁이로서는 서천꽃밭을 찾아가는 일이 무척이나 난감한 일이었다. 그것은 2만리가 넘는 머나먼 땅을 지나 황천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자현장자가 기르는 개였다. 장자에게는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동이 개와 만리를 가는 만리동이 개가 있었다. 얼마나 사나운지 맹수도 당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도망치는 종이 있을라치면 두 마리 개가 나서서 단숨에 종을 물고 돌아왔다. 그리고 엄청난 벌이 가해지는 것이다.
한락궁이는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가면서 곰곰히 자현장자 집을 벗어날 계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산 한쪽에서 세 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다가 한락궁이를 부른 것이었다.
"허허, 무슨 큰 걱정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러지 말고 저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가보거라. 거기 가면 하얀 사슴이 있을 것이다. 하루에 오천리를 가는 사슴이지. 도움이 될게야."
그 말을 들은 한락궁이는 서둘러 골짜기로 향하였다. 과연 하얀 사슴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한락궁이는 그 사슴을 끌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현장자는 그 사슴을 보고서 매우 좋아하였다.
그날밤 한락궁이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 내일 아침에 길을 떠나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쌀가루 한 되에 소금 한 되를 섞어서 떡을 만들어 주십시오."
다음날 아침 한락궁이는 어머니에게서 떡을 받아들고 눈물의 이별을 하였다.
"어머니, 꼭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겠습니다. 부디 강녕하십시오."
그리고는 서둘러 자현장자에게 가서 고하였다.
"장자님, 어제 끌고 온 흰사슴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얼른 나가서 찾아오겠습니다."
"그래, 어서 찾아오너라."
한락궁이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밤 사이에 몰래 숨겨두었던 흰사슴을 타고 서쪽을 향하여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신선들의 말대로 하루 만에 오천리를 달렸다.
한편 집을 나선 한락궁이가 저녁이 돼도 돌아오지 않자 속은 것을 안 자현장자가 분개하면서 말했다.
"제 녀석이 뛰어봤자 벼룩이지. 몇리나 갔을라고."
자현장자는 바로 천리동이 개를 보내 한락궁이를 잡아오게 했다. 천리동이 개가 날랜 걸음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이미 오천리 밖으로 간 한락궁이를 잡을 리 만무였다. 화가 난 자현장자가 이번에는 만리동이 개를 내보냈다. 만리동이 개가 나는 듯이 한락궁이의 뒤를 쫓았다. 결국 한락궁이는 집 떠난 지 사흘 째에 만리동이 개에게 붙잡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한락궁이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떡을 만리동이 개에게 던져주었다. 개가 무심코 떡을 삼킨 순간, 그 떡이 어찌나 짰던지 만리동이 개는 목이 막히는 것 같아 참지 못하고 컹컹거리며 내달아 만리 밖으로 물을 마시러 갔다.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만리동이 개가 다시 한락궁이를 쫓았다.
그러나 한락궁이는 이미 서역국을 지나 황천바다에 도착한 뒤였다. 그 바닷가에 이르러 건널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무엇인가 바닷가로 떠오는 물체가 보였다. 가서 살펴보니 커다란 늙은 거북이였다. 한락궁이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그 거북이 등에 올라탔다. 거북이는 유유히 황천바다를 가로질러 한락궁이를 서천꽃밭 입구에 내려주었다.
한락궁이는 서둘러 서천꽃밭으로 향했다. 길을 잘 몰라 방황하는데 까마귀 일곱 마리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희들은 왜 울고 있느냐?"
"저희들은 배가 고픈데 벌레를 잡아먹을 기력이 없어 울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락궁이가 가련히 여겨 벌레를 잡아서 먹여 주었다. 그러자 까마귀들이 기력을 찾아서 날아 올랐다.
"그런데 어디에 가시는 길이신가요?"
"서천꽃밭을 찾아간다."
"그럼 우리를 따라오세요."
한락궁이는 까마귀의 길 안내를 받아서 드디어 서천꽃밭에 당도하였다. 서천꽃밭에는 소녀들이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 꽃의 모양과 색깔이 참으로 가지가지였다. 한락궁이가 소녀들에게 꽃감관 있는 곳을 물으니 한 소녀가 길을 안내하였다. 큰 기와집 안에 들어가니 여러 관리들이 일을 보고 있다가 한락궁이를 보고 물었다.
"너는 누군데 여기에 들어왔느냐?"
"저는 인간세상에서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이곳에서 꽃감관을 하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들은 관리들이 한락궁이 옆에 모여들었다.
"그래 네 아버지가 누구란 말이냐?"
"우리 어머니는 원강암이시고 아버지는 원강도령이십니다. 제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서천꽃밭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때 한 관리가 퍼뜩 놀라며 한락궁이에게 다가서 손을 잡았다.
"뭐라고? 그러면 혹시 네 이름이 한락궁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제 이름을 어떻게..."
"혹시 어머니에게서 받은 증표가 없느냐?"
한락궁이가 빗 조각을 내었다. 그러자 그 관리가 황급히 품속에서 빗 한 조각을 꺼내어 서로 맞추어 보았다. 영락없이 맞아 떨어졌다. 관리가 한락궁이를 부둥켜 안았다.
"얘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내가 네 아버지란다."
"아버지..."
한동안 그렇게 시간이 갔다. 원강도령이 물었다.
"그런데 네 어머니는?"
"어머니는..."
한락궁이는 자현장자가 자기를 괴롭히고 어머니를 핍박한 사연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원강도령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게 다 이 애비 탓이로구나. 그나저나 얘기를 듣고 보니 네 어머니에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겼을 게 분명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원강도령은 한락궁이를 이끌고 꽃밭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꽃을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 꽃은 보통 꽃들이 아니란다. 인간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명까지도 좌우하는 꽃들이지. 사람들의 온갖 감정이 이 꽃들에 달려 있단다. 자, 내가 꽃을 몇 가지 꺾어 줄테니 그것을 가지고 어머니한테로 돌아가도록 해라.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에..."
그러면서 원강도령이 꽃을 꺾어서 준다.
"이것은 웃음꽃, 이것은 싸움꽃, 또 악심꽃. 그리고 이것들은 환생꽃이지. 뼈오를꽃,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트일꽃이야. 서로 혼동하지 말고 잘 기억해 간직하거라."
다음날 한락궁이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꽃을 간직하고 황천바다로 나와 다시 거북이를 타고서 인간세상 땅에 도착하였다. 서천 꽃밭에서 하루를 묵은 동안 인간세상에서는 벌써 일년이 지난지라 전에 타고 왔던 흰사슴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락궁이는 할수없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였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갖은 고생 끝에 한달여 만에 자현장자 집에 도착하였다.
자현장자가 노발대발하며 호통을 쳤다.
"네가 흰사슴을 찾으러 간다고 나가서는 일년이 넘어서야 돌아왔으니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그러자 한락궁이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어머니를 보게 해주십시오."
"네 에미는 벌써 여기를 떠난 지 오래다. 네가 떠나자마자 집을 나가서 아무도 소식을 모른다."
한락궁이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천리동이, 만리동이 개가 있으니 그렇게 떠나보낼 리 만무였던 것이다.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저런 당돌한 녀석. 그래 사실대로 말해주지. 네 에미는 상전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벌써 까마귀밥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네 차례다. 얘들아 어서 저 녀석을 묶어서 꿇려라."
종들이 장자의 명령을 받고 모여들려 할 때였다. 한락궁이가 짐짓 웃음을 지으며 공손하게 말하였다.
"잠깐, 장자님 제 말씀 좀 들어 보십시오. 제가 흰 사슴을 쫓아서 서천까지 갔다가 신기한 꽃들을 얻어왔습니다. 이걸 한 번 보시지 않겠습니까? 한번 보면 백년 살고 두번 보면 천년 사는 꽃이지요."
자현장자가 반신반의하면서 말했다.
"그래, 어디 한 번 내 봐라."
"장자님 가족이 다 모이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자현장자는 호기심에 식구들을 다 모이게 했다. 평소 아버지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이 많던 셋째 딸을 제외한 식구들이 다 모였다. 그러자 한락궁이는 먼저 웃음꽃을 내놓아 그들에게 뿌렸다. 그러자 장자의 가족들이 갑자기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배를 움켜쥐고 대굴대굴 굴러댔다. 그것을 본 한락궁이가 이번에는 싸움꽃을 꺼내서 뿌렸다. 장자의 가족들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서 서로 노려보며 싸우기 시작한다. 말다툼을 하는가 싶더니 멱살을 잡고 주먹질과 발길질이 오간다. 이때 한락궁이는 다시 악심꽃을 꺼내서 뿌렸다. 그러자 사람들의 눈빛에 살기가 돌기 시작한다. 주먹질과 발길질이 점점 거칠어지는가 싶더니 한명 두명 쓰러지기 시작한다. 결국은 모두 다 그렇게 쓰러지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던 천리동이
개와 만리동이 개도 서로 맞붙어 싸우다가 함께 죽어 버렸다.
한락궁이는 원수를 갚은 다음 장자의 셋째 딸을 불러 말하였다.
"우리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똑바로 말해 주시오."
겁에 질린 딸이 말하였다.
"저기 청대 밭 속에 묻혀 계십니다."
한락궁이가 즉시 청대밭으로 들어가 보니 어머니의 시신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는데 원한이 사무쳐서인지 이마에 동백나무가 자라 있고 가슴께는 오동나무가 서 있었다. 한락궁이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다가 눈물을 훔치고서 서천꽃밭에서 가지고 온 환생꽃들을 꺼냈다. 먼저 뼈오를꽃을 유해 위에 뿌리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뼈들이 절그럭거리며 서로 맞붙는 것이었다. 이어 살오를꽃을 뿌리니 살이 피어오르고, 피오를꽃을 뿌리니 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꽃으로 어머니의 몸을 살아있을 때의 모습으로 만든 한락궁이는 무릎을 꿇고 하늘에 기도를 했다. 그리고 숨트일꽃을 입 위에 올려놓고 크게 외쳤다.
"어머니!"
그러자 어머니는 쾅 하고 숨을 내쉬더니 깜짝 놀라서 눈을 뜨며 일어나 앉았다. 어안이 벙벙한 듯 잠시 사방을 둘러보더니 아들이 앞에 와 있음을 깨닫고서 부둥켜 안았다. 그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어머니가 한락궁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한락궁이는 아버지를 만난 일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어머니 시신에 동백나무와 오동나무가 자랐으니 웬일입니까?"
"그것은 내 원한이 사무쳐서 자란 것이란다. 어떻든 앞으로 동백나무에 열매가 맺거든 기름을 짜서 여인들 머리에 바르게 하고, 오동나무는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상장(喪杖)을 만들게 하자꾸나."
어머니를 되살린 한락궁이는 집안의 종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여러분들을 못살게 굴던 자현장자는 죽고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집의 주인이예요. 부디 서로 돕고 사랑하며 행복하게들 사세요."
그러면서 한락궁이는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선심꽃을 사람들에게 뿌려 주었다. 자현장자의 셋째 딸은 사람들 심부름을 하면서 함께 살도록 마련하였다. 그후 그곳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한락궁이는 그 일을 마친 다음 어머니를 모시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음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고, 사람들 마음을 착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을 들렀음은 물론이다.
그런 다음 한락궁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가 계신 서천꽃밭으로 향했다. 오랜 여행 끝에 한락궁이 모자가 이른 곳은 서역국 열두 고개 넘어 저승세계로 향하는 나루터였다. 한락궁이가 나루를 지키는 군사들더러 서천꽃밭으로 태워다 달라고 하니 군사들이 웬 놈이냐면서 막아 섰다. 이곳은 인간이 범접할 곳이 아니라면서 멀리 쫓아냈다. 이미 다녀온 길이라 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때였다. 갑자기 하늘나라에서 선관 둘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군사에게 말하였다.
"혹시 여기 웬 모자분이 오시지 않았더냐?"
"예, 좀 전에 저기..."
"옥황상제님의 엄명이시다. 그분들을 잘 모시도록 하라. 장차 큰 일을 하실 분이시니라."
놀란 군사들이 서둘러 모자를 모셔다가 배를 댔다. 사공이 운무를 헤치고 노를 저어 살같이 나아가 서천꽃밭 입구에 모자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는 원강도령과 원강암이 부부의 눈물의 재상봉. 온갖 한을 다 털어 버리는...
옥황상제는 원강암이를 선녀로 삼아 원강도령과 함께 살도록 마련하였다. 그리고 한락궁이의 신직을 마련하였다.
"한락궁이는 장차 서천꽃밭의 최고 책임자로 삼을 것이다."
그 말대로 한락궁이는 장성한 후에 서천꽃밭의 최고 감관이 되어 꽃밭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서천꽃밭에 살면서 인간세상에 갖가지의 꽃씨를, 눈에 보이는 꽃씨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꽃씨를 보내 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곱고 아름답게 되도록 보살펴 주고 있다고 한다.
한락궁이 - 서천꽃밭의 꽃대왕
먼 옛날 시골 한 마을에 아주 가난한 사람과 부유한 사람이 이웃에 살고 있었다. 두 집 다 열심히 일을 했지만, 이상하게 한 집에는 재산이 모이지 않고 한 집에만 재산이 쌓였다. 비록 가진 재산에는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은 어릴 적부터의 우정을 변치 않고 의좋게 지냈다.
그런데 두 집에는 공통된 걱정거리가 있었으니, 늦도록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걱정을 하던 끝에 명산대천을 찾아가 신령님과 부처님에게 자손을 빌기로 하였다. 각자 공양을 올리는데, 부잣집에서는 황금을 준비해 성대하게 올렸지만 가난한 집은 올릴 것이 마땅치 않아 걱정이었다. 고민 끝에 그 집에서는 제사용으로 틈틈히 모아 두었던 얼마 되지 않는 쌀을 꺼내어 손으로 뉘를 고르고 한 톨 한 톨 세심히 씻으며 아침이슬을 맞히는 등 갖은 정성을 들여 신령님께 올렸다.
그러한 정성이 통해서인지 얼마 후에 두 집 안주인에게 각각 태기가 있었다. 한날 한시에 아이를 낳았는데, 가난한 집 아이는 아들이고 부잣집 아이는 딸이었다. 남자 아이는 원강도령, 여자 아이는 원강암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두 아이는 여느 아이들처럼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났는데, 원강도령에게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감정 표현이 얼마나 풍부한지, 원강도령이 한번 울음을 울면 사람들이 다들 슬퍼지고, 그가 한번 웃으면 다들 마음이 밝아졌다. 그가 한번 미워하는 눈길을 보내면 그만 섬찟해지고, 사랑스런 눈길을 보내면 이끌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원강도령은 한날 한시에 태어난 원강암이와 친하게 지냈는데, 나이가 들면서 원강암이를 보는 원강도령의 눈길이 점차 그윽해졌다. 그 눈길에 끌려 원강암이는 원강도령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그 사실을 눈치챈 두 집 가장이 만나 혼인을 약속하였다.
"한날 한시에 난 것도 신기한데, 자기네들끼리도 좋아하는 눈치니..."
"아마도 천생 연분인가 보네그려."
원강암이의 어머니가 딸을 가난한 집에 시집보내기를 내켜하지 않았으나, 가장은 거기 개의치 않았다.
"재산이란 금방 있다가도 없는 것, 그런 소리 마시구려."
원강도령과 원강암이는 양가 부모와 동네 사람들의 축복 속에 혼인을 치뤘다. (원강도령을 짝사랑하던 처녀들이 몰래 눈물을 지었다던가...) 그리고 단꿈 같은 신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부유하게 살던 원강암이는 가난한 살림이 처음에 무척 힘들었으나, 살아보니 불편하긴 해도 못살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갈수록 새롭게 솟아나는 남편과의 정이 큰 힘이 됐다.
그런데 꿈같은 세월도 잠시, 결혼한 지 삼년이 되던 어느 날 원강도령은 이상한 꿈을 꾸었다. 하늘나라 사자가 나타나 말을 전한다.
"원강도령, 도령은 본래 하늘나라 사람으로서 죄를 받아서 이세상에 내려왔는데, 이제 죄가 다했다오. 옥황상제께서 그대를 서천꽃밭 감관을 삼으시려 하니 날이 밝는 대로 행장을 꾸려 나서도록 하오. 동구밖에서 기다리겠오."
깜짝 놀라 깼는데, 꿈이 생시처럼 생생하였다. 그 꿈얘기를 아내 원강암이에게 하니 아내가 놀라며 하는 말,
"나도 같은 꿈을 꾸었어요. 남편이 이제 서천꽃밭으로 떠나야 한다면서..."
둘이 의아해하며 날을 보내자 다시 같은 꿈이 이틀 사흘 계속 꾸어진다.
"원강도령, 상제께서 특별히 그대를 산 몸으로 부르셨거늘, 어서 응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하고 벌을 받게 될 것이오. 내일은 꼭 떠나야 하니 반드시 동구밖으로 나오도록 하오."
원강도령은 어쩔수없이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갈 수 없었다. 아내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남편 뒤를 따르겠다고 하였다. 문제는 원강암이의 몸이었다. 아이를 가져 산달을 두어 달밖에 남겨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서로 헤어져서는 살 수 없었던 두 사람은 간단히 짐을 챙겨서 함께 길을 나섰다. 원강도령의 아내가 따라온 것을 본 하늘나라 사자가 혀를 끌끌 찼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냥 동행하도록 하였다.
사자를 따라 서천꽃밭을 향하는데 그 길이 한량없었다. 사자는 축지법을 쓰는지 힘든 기색이 없는데 원강도령과 원강암이는 힘들기 그지 없었다. 특히 임신한 몸의 원강암이가 겪는 고통이 헤아릴 수 없었다. 원강도령이 부축도 하고 업어주기도 했지만, 무한정 그럴 수 없는 일이었다. 사자에게 얼마를 가야 하느냐고 물으니 아마 석달은 걸리리라고 한다. 이렇게 힘들게 걸어서 가야만 하느냐고 물으니, 뜻하지 않은 동행이 있어 어쩔수없는 일이라고 한다. 원강암이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렇게 힘들여 길을 간 지 한 달 정도 된 날, 인가도 없는 산중을 며칠째 힘들여 걸었을 때였다. 원강암이가 그만 자리에 퍼질러 앉더니 일어날 줄을 모른다. 그러면서 말한다.
"여보, 나는 더이상 갈 만한 기력이 없으니 당신 혼자 가세요."
"그게 무슨 말이요? 얼마나 고생하면서 예까지 왔는데... 어서 힘을 내구려. 여기 이렇게 앉아 있다가는 늑대밥이 될 거요."
그러면서 원강암이를 들쳐업는다. 그리고 사자에게 묻는다.
"도대체 얼마나 가야 인가가 있단 말입니까?"
"글쎄, 몇 시간만 더 가면 아마 자현장자 집이 나올게요."
그 말에 힘을 얻어 걷기를 두어 시간, 원강도령도 이제 더이상은 버틸 만한 기력이 없어졌을 무렵, 개우는 소리와 닭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마을과 높은 담장이 둘러쳐진 덩그란 기와집. 바로 자현장자의 집이었다. 자현장자는 해동국과 서역국 사이 나라 없는 땅에서 큰 마을 지배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원강도령이 말했다.
"이제 됐어. 이 집에서 쉬어 갑시다."
이때 죽은 듯이 업혀 있던 원강암이가 원강도령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는 내려서 남편에게 말한다.
"낭군님, 저 집에 들어가기 전에 청이 있어요."
"말해 보구려."
"서천꽃밭에 이르려면 앞으로 남은 길이 수만리, 저와 함께는 도저히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저를 이 집에 두고 가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당신 없이는 갈 수 없소."
"그러다가는 우리 둘, 아기까지 셋이 다 죽고 맙니다."
한동안의 설전. 끝끝내 우기는 원강암이.
"그나저나 이 집에서 당신을 받아줄 리도 만무잖소."
"그냥은 안 받아 주겠죠. 그러나 종살이를 하겠다면 받아줄 겁니다."
"종살이라니, 무슨 그런 당치않은 말을..."
그러나 원강암이의 태도는 단호했다. 자신을 그 집에 맡기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그냥 쓰러져 죽겠다는 것이었다. 원강도령은 한 사발 눈물을 쏟은 후에 어쩔 수 없이 아내의 청을 받아들였다.
사자와는 다음날 아침 만나기로 하고 원강도령은 아내와 함께 자현장자의 집에 들어갔다. 원강암이 친정은 비교도 안 될 저도의 큰 부잣집이었다. 집이 수백칸에 종이 백명이 넘었다. 원강도령은 주인을 찾아서 하룻밤 묵어갈 것을 청하였다. 그러자 종이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만두구려. 이 집은 손님을 안 받는 집이오. 주인님의 엄명이라오."
"그러나 저러나 사정이 있으니 제발 한번만 주인님을 뵙게 해주시오."
원강도령이 간곡하개 호소하자 냉정하기만 하던 종이 자기도 모르게 동정심이 생겨나서 부부를 이끌고 자현장자에게 가서 아뢴다. 자현장자가 방문을 열고서 거만하게 말한다.
"어떤 자가 무슨 일로 나를 보겠다는 건가?"
"장자님, 길 가던 나그네입니다. 간곡히 청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을..."
더 말을 잇지 못하는 원강도령. 그러자 원강암이가 말한다.
"저를 이 댁 종으로 받아 주십시오. 지성껏 일하겠습니다."
한번 훑어보는 자현장자. 마침 그 방에는 그의 세 딸이 들어와 있었다.
"얘들아, 니들 보기에 어떠냐?"
첫째 딸이 말한다.
"약해 빠져서 일하기 틀렸어요. 그만두세요."
둘째 딸,
"우리 집에 종이 수두룩하잖아요. 종들 먹는 밥이 얼만데요. 그만두세요."
그러자 셋째 딸이 말한다.
"글쎄, 일을 시켜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잖아요? 일단 받아들이세요."
자현장자가 다시 원강암이를 훑어보고서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대답하였다.
"좋소. 내 특별히 받아들여 주리다."
잠시 후 저녁상이 나오는데 원강도령은 사랑방으로 불러 손님상을 차려주고는 종이 된 원강암이에게는 부엌 구석에 식은 밥을 물에 말아서 준다. 원강도령이 눈물을 세번 흘리고서 자현장자에게 말했다.
"이 마을 풍습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마을 풍습은 서로 이별할 때 상을 차려 마주앉아 먹게 하는 법입니다."
그 말에 불쌍한 생각이 들었는지 원강암이를 불러 원강도령과 함께 식사를 하게 하였다. 국묵을 먹는지 눈물을 삼키는지... 그날 밤 다시 원강도령은 사랑채로 들게 하고 원강암이는 종들이 자는 행랑채로 보내려 한다. 그러자 원강도령이 말했다.
"이곳 풍속은 모르나, 우리 풍속은 비록 종이 되었어도 가족이 이별할 때는 한방에서 거처하게 한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그 말과 함께 원강도령이 자현장자를 쏘아보니 그 눈빛에 놀란 장자가 움찔하면서 말한다.
"알았소. 내 특별히 그렇게 해주지."
마지막, 이별의 밤. 나란히 앉아서 한참을 벽만 보고 있다가 원강암이가 말하였다.
"낭군님, 제 걱정 마시고 하늘에서 맡기신 일을 성심껏 하세요. 뱃속의 아이가 나오면 제가 부끄럽지 않게 잘 키워서 낭군님께 보내겠습니다. 그나저나 가기 전에 뱃속에 있는 우리 아기 이름이나 지어 주세요."
"아이 이름이라... 만일 딸을 낳거든 한락데기라고 하고 아들을 낳거든 한락궁이라고 하구려."
"낭군님,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증표나 하나 주고 가세요."
그 말에 원강도령은 품 속에서 상동나무 빗을 꺼내어 두동강을 냈다. 그리고 서로 한 동강씩을 나누어 가졌다. 그런 다음 둘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껴안았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 거예요."
"그럼 그렇구말구."
다음날 원강도령은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길을 떠났고, 원강암이는 종살이를 시작했다. 아이를 출산할 날이 임박했던지라 자현장자는 힘든 일을 시키지 않고 간단한 허드렛일을 시켰다. 장자는 가끔 가다 원강암이를 보면 힘들지 않느냐고 하면서 뜻 모를 눈웃음을 짓곤 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산통이 찾아와 원강암이는 오랜 산고 끝에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울음소리가 얼마나 맑고 구슬픈지 다들 뜻아니게 눈물이 맺히려고 할 정도였다. 원강암이는 남편이 말한대로 아이의 이름을 한락궁이라고 지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산후 조리도 채 끝나기 전이었다. 하루는 원강암이가 혼자 부엌에서 아이에게 젖을 주고 있는데 자현장자가 찾아왔다. 그리고 은근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산후 조리는 잘 됐느냐?"
원강암이가 그 눈빛이 뭔가 불길하다고 느끼는 순간, 장자가 뜻밖의 말을 꺼낸다.
"그래, 힘들지? 그러지 말고, 네가 호강하는 길이 있다. 이제 종노릇은 그만두고 내 첩이 돼서 나와 함께 살자꾸나. 그러면 이 집이 다 네 집이 될 것이야."
원강암이는 그 말이 청천벽력과 같았다. 자현장자가 자신을 종으로 받아준 것도, 자신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아니 그게 무슨... 저는 비록 종이지만 엄연히 남편이 있는 몸입니다. 그렇게는 할 수는 없습니다."
"뭐라구? 허허 이런 고얀. 내가 기껏 저를 생각해서 은혜를 베풀려 했거늘..."
자현장자는 화를 내고서 부엌에서 나가 버렸다.
그 다음날부터 원강암이에게 온갖 힘든 일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하는 집안일은 물론이고 쟁기로 밭을 가는 일, 나뭇짐을 져오는 일, 장작을 패는 일 등등 남자들도 하기 힘든 일이 쉴새없이 이어졌다. 산후 조리도 못한 몸에 도저히 견디기 힘든 중노동이었다. 원강암이의 몸은 아주 수척해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사람처럼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자현장자가 살짝 원강암이를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 것이었다.
"어때, 그새 생각 좀 해봤느냐? 괜한 고집 피우지 말고 나랑 함께 살자꾸나. 안 그러면 앞으로 며칠도 못 버티고 쓰러지고 말 걸."
원강암이는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다. 까짓것 그대로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핏덩어리 어린 아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원강암이는 임시방편으로 다음과 같이 둘러댔다.
"좋습니다, 주인님. 주인님을 모시고 살죠.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우리 마을 퐁속은 아이가 태어난 후 노래도 부르고 죽마를 타고 놀며 지게도 지고 밭도 갈게 되면 그때 가서 재가를 하게 돼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정이 타서 저도 주인님도 다 죽어 버리게 된답니다. 아이가 클 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자현장자는 찜찜했으나 그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한락궁이는 자라나면서 아버지 원강도령을 꼭 빼닮았다. 용모뿐 아니라 성격까지 그랬다. 감정 표현이 어찌 풍부한지 한락궁이가 웃으면 다들 마음이 밝아지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다들 우울해졌다. 그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사람을 보면 다 거기 빨려드는 것인데, 주변 하인들이 다 그랬다. 한락궁이는 종들이 힘든 일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불쌍하고 동정하는 눈으로 그들을 보는데 그러면 다들 위안이 되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야 어땠으랴. 한락궁이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고맙고 불쌍하고 슬픈 수많은 감정이 뒤얽히는 것이었다. 한락궁이를 보는 어머니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한락궁이는 유난히 자현장자와 그 가족들을 미워했다. 자기네들만 편하게 배불리 먹고 살면서 종들을 맘대로 부려먹는 것이 억울하고 분했다. 그래서 자현장자를 볼 때마다 증오심 서린 눈으로 쏘아보는데, 그 눈빛과 만나면 장자는 등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그리고 나서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이고, 저 녀석을 그냥...'
한락궁이가 일곱살, 여덟살이 되자 자현장자는 온갖 힘든 일들을 시키기 시작했다. 새끼를 꼬고 나무를 해오는 일 따위를 시키는데, 도저히 아이가 감당하지 못할 많은 분량을 명하였다. 한락궁이가 힘들여 책임량을 마치면 일이 부실하다고 트집을 잡아 밥을 굶기기 일쑤였다.
하루는 자현장자가 한락궁이에게 좁쌀 한 가마를 주면서 명했다.
"저 산기슭에 가서 나무를 베어내 밭을 만들고 거기다가 이 씨를 뿌리고 와라. 오늘 중에 끝내야 한다."
한락궁이는 나무를 베는 데만 하루를 거진 다 쓰고 지쳐서 주저앉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큰 산돼지 두 마리가 나타나 싸우면서 나무 등걸들을 들이받아 다 뽑아내고 땅을 헤치는 것이었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니 순식간에 밭이 일구어졌다. 한락궁이는 기뻐하면서 그 밭에 좁쌀을 다 뿌리고서 돌아왔다.
한락궁이가 일을 끝냈다는 말을 들은 자현장자가 놀래 사람을 보내 확인해 보니 과연 그러했다. 그러자 장자는 다시 한락궁이에게 말했다.
"어허, 오늘은 씨 뿌릴 날이 아닌데 잘못 뿌렸구나. 가서 다시 다 모아가지고 오너라."
한락궁이는 짐짓 딴전을 펴는 장자를 한 번 쏘아보고는 밭 일군 데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사이에 개미떼들이 좁쌀 씨를 일일히 짊어져 옮겨서 한 군데에 다 모아놓은 것이었다. 한락궁이는 그 좁쌀을 가마니에 넣어서 돌아왔다. 자현장자가 놀랐음은 물론이다.
'흠, 보통 녀석이 아니야. 저대로 뒀다가는 후환이 있을 거야.'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락궁이 나이 열 살이 되었다. 기회만 벼르고 있던 자현장자는 이제 한락궁이가 다 컸다면서 소를 몰고 밭을 가는 일을 시켰다. 열 살 아이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으나, 한락궁이는 오기로써 그 일을 해냈다. 그 모습을 본 자현장자는 음흉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몰래 원강암이를 불렀다.
"자, 보거라. 이제 네 아들이 다 커서 밭가는 일도 능히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니 이제 약속대로 내 첩이 되는 거다."
드디어 올 것이 왔음을 안 원강암이가 말했다.
"얼마간만 여유를 주세요. 아이도 타일러야 하고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있으니요."
원강암이가 간청 끝에 얻은 말미는 단 사흘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밤 원강암이는 한락궁이를 불렀다. 그리고 정색을 하고 말했다.
"얘야. 이제 너도 다 컸으니, 네 아버지에 대해서 알려줄 때가
되었다. 그 동안 무척이나 궁금했겠지? 그래, 네 아버지는 보통 분이 아니시다. 저 하늘나라에서 오신 분으로 지금은 저승세계 서천꽃밭에서 벼슬을 하고 계신 훌륭한 분이시다. 네 아버지를 찾아 떠나거라."
그러면서 원강암이는 원강도령에게서 받은 쪼개진 빗을 한락궁이에게 전해 주었다. 순간 한락궁이의 눈이 빛났다.
"어머니, 꼭 아버지를 찾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떠나면 어머니는..."
"내 걱정은 말거라. 네 할일은 아버지를 찾는 일이야."
그 목소리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한락궁이로서는 서천꽃밭을 찾아가는 일이 무척이나 난감한 일이었다. 그것은 2만리가 넘는 머나먼 땅을 지나 황천바다를 건너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서운 것은 자현장자가 기르는 개였다. 장자에게는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동이 개와 만리를 가는 만리동이 개가 있었다. 얼마나 사나운지 맹수도 당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도망치는 종이 있을라치면 두 마리 개가 나서서 단숨에 종을 물고 돌아왔다. 그리고 엄청난 벌이 가해지는 것이다.
한락궁이는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가면서 곰곰히 자현장자 집을 벗어날 계책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산 한쪽에서 세 명의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다가 한락궁이를 부른 것이었다.
"허허, 무슨 큰 걱정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러지 말고 저 산골짜기 깊은 곳으로 가보거라. 거기 가면 하얀 사슴이 있을 것이다. 하루에 오천리를 가는 사슴이지. 도움이 될게야."
그 말을 들은 한락궁이는 서둘러 골짜기로 향하였다. 과연 하얀 사슴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한락궁이는 그 사슴을 끌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현장자는 그 사슴을 보고서 매우 좋아하였다.
그날밤 한락궁이가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 내일 아침에 길을 떠나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쌀가루 한 되에 소금 한 되를 섞어서 떡을 만들어 주십시오."
다음날 아침 한락궁이는 어머니에게서 떡을 받아들고 눈물의 이별을 하였다.
"어머니, 꼭 아버지를 만나고 돌아오겠습니다. 부디 강녕하십시오."
그리고는 서둘러 자현장자에게 가서 고하였다.
"장자님, 어제 끌고 온 흰사슴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제가 얼른 나가서 찾아오겠습니다."
"그래, 어서 찾아오너라."
한락궁이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 밤 사이에 몰래 숨겨두었던 흰사슴을 타고 서쪽을 향하여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신선들의 말대로 하루 만에 오천리를 달렸다.
한편 집을 나선 한락궁이가 저녁이 돼도 돌아오지 않자 속은 것을 안 자현장자가 분개하면서 말했다.
"제 녀석이 뛰어봤자 벼룩이지. 몇리나 갔을라고."
자현장자는 바로 천리동이 개를 보내 한락궁이를 잡아오게 했다. 천리동이 개가 날랜 걸음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이미 오천리 밖으로 간 한락궁이를 잡을 리 만무였다. 화가 난 자현장자가 이번에는 만리동이 개를 내보냈다. 만리동이 개가 나는 듯이 한락궁이의 뒤를 쫓았다. 결국 한락궁이는 집 떠난 지 사흘 째에 만리동이 개에게 붙잡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한락궁이는 어머니에게서 받은 떡을 만리동이 개에게 던져주었다. 개가 무심코 떡을 삼킨 순간, 그 떡이 어찌나 짰던지 만리동이 개는 목이 막히는 것 같아 참지 못하고 컹컹거리며 내달아 만리 밖으로 물을 마시러 갔다.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린 만리동이 개가 다시 한락궁이를 쫓았다.
그러나 한락궁이는 이미 서역국을 지나 황천바다에 도착한 뒤였다. 그 바닷가에 이르러 건널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무엇인가 바닷가로 떠오는 물체가 보였다. 가서 살펴보니 커다란 늙은 거북이였다. 한락궁이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그 거북이 등에 올라탔다. 거북이는 유유히 황천바다를 가로질러 한락궁이를 서천꽃밭 입구에 내려주었다.
한락궁이는 서둘러 서천꽃밭으로 향했다. 길을 잘 몰라 방황하는데 까마귀 일곱 마리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희들은 왜 울고 있느냐?"
"저희들은 배가 고픈데 벌레를 잡아먹을 기력이 없어 울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한락궁이가 가련히 여겨 벌레를 잡아서 먹여 주었다. 그러자 까마귀들이 기력을 찾아서 날아 올랐다.
"그런데 어디에 가시는 길이신가요?"
"서천꽃밭을 찾아간다."
"그럼 우리를 따라오세요."
한락궁이는 까마귀의 길 안내를 받아서 드디어 서천꽃밭에 당도하였다. 서천꽃밭에는 소녀들이 꽃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 꽃의 모양과 색깔이 참으로 가지가지였다. 한락궁이가 소녀들에게 꽃감관 있는 곳을 물으니 한 소녀가 길을 안내하였다. 큰 기와집 안에 들어가니 여러 관리들이 일을 보고 있다가 한락궁이를 보고 물었다.
"너는 누군데 여기에 들어왔느냐?"
"저는 인간세상에서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이곳에서 꽃감관을 하고 계십니다."
그 말을 들은 관리들이 한락궁이 옆에 모여들었다.
"그래 네 아버지가 누구란 말이냐?"
"우리 어머니는 원강암이시고 아버지는 원강도령이십니다. 제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서천꽃밭으로 떠나셨습니다."
그때 한 관리가 퍼뜩 놀라며 한락궁이에게 다가서 손을 잡았다.
"뭐라고? 그러면 혹시 네 이름이 한락궁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제 이름을 어떻게..."
"혹시 어머니에게서 받은 증표가 없느냐?"
한락궁이가 빗 조각을 내었다. 그러자 그 관리가 황급히 품속에서 빗 한 조각을 꺼내어 서로 맞추어 보았다. 영락없이 맞아 떨어졌다. 관리가 한락궁이를 부둥켜 안았다.
"얘야,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내가 네 아버지란다."
"아버지..."
한동안 그렇게 시간이 갔다. 원강도령이 물었다.
"그런데 네 어머니는?"
"어머니는..."
한락궁이는 자현장자가 자기를 괴롭히고 어머니를 핍박한 사연을 하나하나 이야기하였다. 원강도령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게 다 이 애비 탓이로구나. 그나저나 얘기를 듣고 보니 네 어머니에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겼을 게 분명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원강도령은 한락궁이를 이끌고 꽃밭으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꽃을 이것저것 가리키면서 말한다.
"이 꽃은 보통 꽃들이 아니란다. 인간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명까지도 좌우하는 꽃들이지. 사람들의 온갖 감정이 이 꽃들에 달려 있단다. 자, 내가 꽃을 몇 가지 꺾어 줄테니 그것을 가지고 어머니한테로 돌아가도록 해라.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묵고 내일 아침에..."
그러면서 원강도령이 꽃을 꺾어서 준다.
"이것은 웃음꽃, 이것은 싸움꽃, 또 악심꽃. 그리고 이것들은 환생꽃이지. 뼈오를꽃,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트일꽃이야. 서로 혼동하지 말고 잘 기억해 간직하거라."
다음날 한락궁이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꽃을 간직하고 황천바다로 나와 다시 거북이를 타고서 인간세상 땅에 도착하였다. 서천 꽃밭에서 하루를 묵은 동안 인간세상에서는 벌써 일년이 지난지라 전에 타고 왔던 흰사슴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락궁이는 할수없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였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갖은 고생 끝에 한달여 만에 자현장자 집에 도착하였다.
자현장자가 노발대발하며 호통을 쳤다.
"네가 흰사슴을 찾으러 간다고 나가서는 일년이 넘어서야 돌아왔으니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그러자 한락궁이가 말했다.
"그건 그렇고, 어머니를 보게 해주십시오."
"네 에미는 벌써 여기를 떠난 지 오래다. 네가 떠나자마자 집을 나가서 아무도 소식을 모른다."
한락궁이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천리동이, 만리동이 개가 있으니 그렇게 떠나보낼 리 만무였던 것이다.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십시오."
"저런 당돌한 녀석. 그래 사실대로 말해주지. 네 에미는 상전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벌써 까마귀밥이 된 지 오래다. 이제 네 차례다. 얘들아 어서 저 녀석을 묶어서 꿇려라."
종들이 장자의 명령을 받고 모여들려 할 때였다. 한락궁이가 짐짓 웃음을 지으며 공손하게 말하였다.
"잠깐, 장자님 제 말씀 좀 들어 보십시오. 제가 흰 사슴을 쫓아서 서천까지 갔다가 신기한 꽃들을 얻어왔습니다. 이걸 한 번 보시지 않겠습니까? 한번 보면 백년 살고 두번 보면 천년 사는 꽃이지요."
자현장자가 반신반의하면서 말했다.
"그래, 어디 한 번 내 봐라."
"장자님 가족이 다 모이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자현장자는 호기심에 식구들을 다 모이게 했다. 평소 아버지 하는 일에 대해 불만이 많던 셋째 딸을 제외한 식구들이 다 모였다. 그러자 한락궁이는 먼저 웃음꽃을 내놓아 그들에게 뿌렸다. 그러자 장자의 가족들이 갑자기 참지 못하고 웃기 시작했다. 배를 움켜쥐고 대굴대굴 굴러댔다. 그것을 본 한락궁이가 이번에는 싸움꽃을 꺼내서 뿌렸다. 장자의 가족들은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서 서로 노려보며 싸우기 시작한다. 말다툼을 하는가 싶더니 멱살을 잡고 주먹질과 발길질이 오간다. 이때 한락궁이는 다시 악심꽃을 꺼내서 뿌렸다. 그러자 사람들의 눈빛에 살기가 돌기 시작한다. 주먹질과 발길질이 점점 거칠어지는가 싶더니 한명 두명 쓰러지기 시작한다. 결국은 모두 다 그렇게 쓰러지고 말았다. 그 자리에 있던 천리동이
개와 만리동이 개도 서로 맞붙어 싸우다가 함께 죽어 버렸다.
한락궁이는 원수를 갚은 다음 장자의 셋째 딸을 불러 말하였다.
"우리 어머니가 어디 계신지 똑바로 말해 주시오."
겁에 질린 딸이 말하였다.
"저기 청대 밭 속에 묻혀 계십니다."
한락궁이가 즉시 청대밭으로 들어가 보니 어머니의 시신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는데 원한이 사무쳐서인지 이마에 동백나무가 자라 있고 가슴께는 오동나무가 서 있었다. 한락궁이는 한참 동안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다가 눈물을 훔치고서 서천꽃밭에서 가지고 온 환생꽃들을 꺼냈다. 먼저 뼈오를꽃을 유해 위에 뿌리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뼈들이 절그럭거리며 서로 맞붙는 것이었다. 이어 살오를꽃을 뿌리니 살이 피어오르고, 피오를꽃을 뿌리니 몸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러가지 꽃으로 어머니의 몸을 살아있을 때의 모습으로 만든 한락궁이는 무릎을 꿇고 하늘에 기도를 했다. 그리고 숨트일꽃을 입 위에 올려놓고 크게 외쳤다.
"어머니!"
그러자 어머니는 쾅 하고 숨을 내쉬더니 깜짝 놀라서 눈을 뜨며 일어나 앉았다. 어안이 벙벙한 듯 잠시 사방을 둘러보더니 아들이 앞에 와 있음을 깨닫고서 부둥켜 안았다. 그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어머니가 한락궁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한락궁이는 아버지를 만난 일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물었다.
"어머니 시신에 동백나무와 오동나무가 자랐으니 웬일입니까?"
"그것은 내 원한이 사무쳐서 자란 것이란다. 어떻든 앞으로 동백나무에 열매가 맺거든 기름을 짜서 여인들 머리에 바르게 하고, 오동나무는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상장(喪杖)을 만들게 하자꾸나."
어머니를 되살린 한락궁이는 집안의 종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여러분들을 못살게 굴던 자현장자는 죽고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이 이 집의 주인이예요. 부디 서로 돕고 사랑하며 행복하게들 사세요."
그러면서 한락궁이는 마음을 아름답게 하는 선심꽃을 사람들에게 뿌려 주었다. 자현장자의 셋째 딸은 사람들 심부름을 하면서 함께 살도록 마련하였다. 그후 그곳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살기 좋은 곳이 되었다.
한락궁이는 그 일을 마친 다음 어머니를 모시고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음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고, 사람들 마음을 착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을 들렀음은 물론이다.
그런 다음 한락궁이는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가 계신 서천꽃밭으로 향했다. 오랜 여행 끝에 한락궁이 모자가 이른 곳은 서역국 열두 고개 넘어 저승세계로 향하는 나루터였다. 한락궁이가 나루를 지키는 군사들더러 서천꽃밭으로 태워다 달라고 하니 군사들이 웬 놈이냐면서 막아 섰다. 이곳은 인간이 범접할 곳이 아니라면서 멀리 쫓아냈다. 이미 다녀온 길이라 하였지만 막무가내였다.
이때였다. 갑자기 하늘나라에서 선관 둘이 구름을 타고 내려와 군사에게 말하였다.
"혹시 여기 웬 모자분이 오시지 않았더냐?"
"예, 좀 전에 저기..."
"옥황상제님의 엄명이시다. 그분들을 잘 모시도록 하라. 장차 큰 일을 하실 분이시니라."
놀란 군사들이 서둘러 모자를 모셔다가 배를 댔다. 사공이 운무를 헤치고 노를 저어 살같이 나아가 서천꽃밭 입구에 모자를 내려 주었다.
그리고는 원강도령과 원강암이 부부의 눈물의 재상봉. 온갖 한을 다 털어 버리는...
옥황상제는 원강암이를 선녀로 삼아 원강도령과 함께 살도록 마련하였다. 그리고 한락궁이의 신직을 마련하였다.
"한락궁이는 장차 서천꽃밭의 최고 책임자로 삼을 것이다."
그 말대로 한락궁이는 장성한 후에 서천꽃밭의 최고 감관이 되어 꽃밭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는 지금도 서천꽃밭에 살면서 인간세상에 갖가지의 꽃씨를, 눈에 보이는 꽃씨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꽃씨를 보내 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곱고 아름답게 되도록 보살펴 주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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