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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고성목과 산방덕

□ 고성목과 산방덕
o 산방산(山房山) 아랫마을 화순리(和順里)에 고성목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때는 산방산과 화순리 일대가 숲으로 덮혀있어 산돼지가 우글대던 시절이었다.
고성목은 천민이었다. 그는 화순리의 큰 터라는 동네에 살았는데, 어느날 일약 부자가 되었다.
o 큰터옆에 "몽동이터"라는 집터가 있는데, 여기에 집을 짓고 종들을 데리고 살았고, 또 그곁에 "불림터"라는 집터가 있는데 여기엔 자객들을 살렸다. 이렇게 그는 이 주변에서 소문난 부자로 살았다. 화순리에는 산방덕이란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있었다. 고성목은 부자여서 이 산방덕을 첩으로 데려살았다.
o 화순리에는 물맛 좋기로 소문난 "곤물"이라는 샘물이 있다. 고성목은 이 곤물이 있는데에다 큰 과수원을 만들고 거기에 별장을 지어첩 산방덕을 살게 했다. 고성목은 자기 집에서 집까지 나들이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장마철이 되면 비가와서 첩 집 출입이 불편했다.
고성목은 날쌔기도 해서 사냥도 잘했다. 그는 산돼지를 수백마리잡아다가 첩의 집까지 장막을 쳐 놓았다.
o 고성목이가 이처럼 호화롭게 산다는 소문이 관아에까지 전해졌다. 관원은 곧 출두하여 고성목의 사는 형편을 자세히 조사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우선 집터부터가 보통이 아니었다. 집이 들어앉은 형국은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었다. 그뿐아니라 그 첩 산방덕은 이만저만한 미모가 아니었다. 보고를 받은 목사는 고성목의 기세를 꺾어놓고 산방덕을 차지하려 했다. 하찮은 신분인데도 그렇게 호의호식하며 산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o 목사는 이놈을 굴복시킬 방도를 마련했다. 목사는 대정현감을 통해서, "목사가 순력하게 되었으니 담배씨를 가지고 석 자 두께로 길을 메워 보수하라"고 영을 내렸다.
고성목은 하루 저녁에 이 일을 해 내었다. 관원들은 물론 대정현감도 놀랐다. 이 소식을 들은 목사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이놈은 보통 사람처럼 다룰 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더 어려운 과제를 제시했다.
o "목사가 순력할 때 수행할 관속들이 쓸 갓과 망건 1백개를 급히 만들어 내라"고 명을 내렸다. 고성목은 이것도 하루저녁 사이에 해놓았다. 관아에서 명하는 대로 척척 다 해내는 것을 보고, 목사는 더욱 마음이 불편했고, 한편 두렵기도 했다.
"이놈은 보통이 아니다. 필연코 가만 놔두면 앞으로 나라에 큰 일을 저지를 놈이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대정 관아 소속 관원들을 모두 동원해서 고성목을 잡아들였다.
o 고성목이 잡혀간 사실을 안 산방덕은 자신도 곧 잡혀갈 신세임을 알았다. 그래서 산방산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산방덕은 본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고성목이 비록 세상 신분으로는 미천하였지만 출중한 능력을 타고난 비범한 인물인 것을알고는 그를 도와주려고 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세상이 하도
어지럽고, 불법이 횡횡해서 그녀는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산방산으로 들어가 숨어버린 것이다.
o 관아에 잡혀간 고성목은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고, 그가 살던 그 대궐같은 큰 집은 관아(官衙)에서 다 불태워버렸고, 그 집터까지도 파헤쳐 버렸다. 그것은 그 자리가 바로 보통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터에 집을 지으면, 비범한 인물이 태어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o 안덕면(安德面) 사계리(沙溪里) 용머리 앞 바닷가에서 "산방덕"이라는 큰 바위가 있다(덕은 바위를 뜻하는 말이다). 이 바위는 고성목의 첩 산방덕이 놀던 곳이어서 그렇게 이름붙였다.
o 고성목이가 산방덕을 첩을 삼아 호화롭게 살다가 관아에 잡혀가자 그 여자는 자신도 위태로움을 느껴서 산방산으로 숨어버렸다. 지금도 산방굴사에서 똑똑 물이 떨어지는데, 이것은 산방덕의 눈물이라고 한다. 그녀는 고성목을 도와주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세상에서 사라져 숨어버렸다. 그러나 그 안타까운 마음은 지금도 그 눈물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보이고 있다.

□ 닥발 정운디 장사
o 정운디는 안덕 면 사계리 이씨 댁 종이었다. 사계리 닥발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닥발 정운디"라 불렀다. 정운디는 체구도 크려니와 힘이 장사였다. 어느날 이씨 댁에서 남방애(절구방아)를 해오라고하니, 그는 나막신을 신은채 연장을 가지고 산방산으로 올라갔다.
저녁때가 되나 혼자서 몇 아름의 나무를 베어 방아를 다 만들고,그것을 마치 갓을 쓰듯 머리에 이고 내려왔다.
o 안덕면 사계리에 "학곳"이라는 데가 있다. 지금도 거기에는 열 두사람이 목도를 메어도 들지 못할 큰 바위가 하나있다. 이 바위는 정운디가 옆구리에 끼고와 내던진 바위라 한다.
o 당시, 사계리에서 큰 못을 팠다. 못을 다 파 놓고 팡돌(사람이 디디고 앉는 크고 넓적한 돌)을 옮겨다 놓으려고 했는데, 그것이 어떻게 무거웠던지 20명이 들어도 옮기지 못했다. 옆에서 보다가, "이리비키십서들"하더니 그 돌을 혼자 옮겨다 놓았다. 씨름판이 벌어져도 정운디를 당해 낼 사람이 없었다. 이때 대정에는 힘이 장사인 오찰방이 있었다. 오찰방은 씨름으로 정운디를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오찰방은 양반집안의 자식이요 정운디는 천한 종이다. 천한 종놈과 씨름을 하여 이기지 못하니 화가 북받쳤다.
"한 번만이라도 정운디를 이겨봤으면..." 오찰방의 소원이었다.
o 어느날, 오찰방은 들판에 다니다가 정운디가 무거운 짐을 지고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똥을 누고 있었다. 등에 진 것은 집 지을 재목인데 이만저만한 분량이 아니다. 그는 주인의 명을 받고 3칸집 한채 지을 재목을 짊어지고 내려오다가 그대로 쭈그려 앉아서 변을 보는 중이었다.
오찰방은 순간,
"옳지, 이때다" 생각하였다.
"요놈을 뒤로 누르면 꼼짝없이 뒤로 나자빠지려니..."
그는 살금살금 뒤로 가서 정운디를 잡아 눌렀다. 그런데 정운디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계속 대변만 보는 것이었다. 오찰방은 짐 위에 올라앉아 뒤로 잡아 눌렀다. 정운디는 용변을 다 보고 우뚝 일어서서 바지허리띠를 매었다. 그 바람에 오찰방은 그만 뒤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o 집에 돌아와서 오찰방은 화가 더욱 치밀었다. 그 부친이 그 처지를 알았다. 그래서 아들 한을 풀어주고 싶었다. 오찰방 부친은 며칠 후 아들 모르게 정운디에게 쌀 한 섬을 종에게 지우고 정운디를 찾아가서 "내아들 소원을 한번만 풀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씨름판에서 한번만 져 달라고 했다. 살림이 궁한 정운디는 쌀섬을 보자 얼른 수락하였다. 그래서 다음 씨름판에 오찰방이 한 번 정운디를 이겼다.
o 이 무렵, 한림읍 명월리(明月里)와 애월면(涯月面) 어음리(於音里) 사이에 있는 "움부리"라는 큰 굴이 있는데 여기에 도둑떼가 살고있었다. 그 수는 70명이 넘어서 지나는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그 도적들을 잡을 도리가 없었다.
o 하루는 모슬포진 조방장이 한림 수원에 있는 자기 집에 쌀썸을 보내야 할 일이 생겼다. 수원으로 가는 도중에 이 도둑소굴이 있었다.조방장은 걱정이 되었다. 조방장은 관원들 생각을 쫒아 정운디를 보내기로 작정했다. 정운디는 쌀섬을 지고 혼자 길을 떠났다. 궤(굴)에 당도해 보니 도둑떼들은 소를 훔쳐다 잡아놓고 푸짐하게 먹고있었다. 정운디는 굴 입구에 짐을 부려놓고 도둑놈에게 "담배불 좀빌립시다" 청을 했다. 도둑은 이외의 손님에 머뭇거렸다. 정운디는 담뱃대를 가지고 불을 붙이는 척하며 굴속의 장작불을 이리짝 저리짝 헤쳐놓았다. 굴 안이 장작불똥으로 가득했다.
o 도둑놈들은 그제야 우르르 그에게 달려들었다. 정운디는 얼른 바깥으로 나와서 굴 입구에 서 있는 굵은 나무를 뿌리째 뽑아들고는 동서로 내둘렀다. 굴 밖으로 쫒아 나오던 도둑놈들이 한 두놈씩 나무에 얻어맞아 나자빠졌다. 그래서 정운디는 이 70명 도둑떼를 모조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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