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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일 저런일/연극감상문

[스크랩] 가슴 뭉클한 소극장 연극-안톱 체홉의 백조의 노래

 

 

 벼르고 벼르던 일이었다.

오늘 아니면 도무지 시간을 내지 못할 것 같아서

2주째 콜록이는 기침을 이끌고 길을 나섰다.

세이레아트센타 입간판의 불빛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층계를 밟았다.

수업 마치고 부지런히 악셀을 밟았지만 5 분 정도 늦은 시각이었다.

어쩜 5분 정도라면 기다려 줄지도 모른다고 살짝  기대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조용하다.

공연 중인가 보다.

귀를 기울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목소리를 따라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카운타를 지나

살그머니 커튼을 열었다.

 

 

 

 

어두웠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어릿광대 분장을 한 광대 한 사람

재빠르게 빈 객석을 확인했다.

슬그머니 자리를 잡고 앉아 습관적으로 주위를 살폈다.

오른쪽

왼쪽

앞에도

뒤에도

없다.

관객이 없다.

그러니까 내가 앉기 전까지는 텅 빈 객석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객석에서 광대는 정확한 공연 시간에 맞춰

혼자 대사를 치고 있었던 것이다.

떨렸다.

아니 짜릿했다.

뭉클했다.

수많은 공연을 보아 왔지만

혼자라니!

나만을 위한 공연이라니!

 

 

 

찌꺼기만 남은 거지......그런 거야, 그런 거라구,

바라든-바라지 않든 이제 시체역을 연습해야 할 때가 된 거야. 죽음은 멀리 있는 게 아냐.

내가 무대에서 45년간을 일했어도, 한밤중에 극장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아.

그래, 처음이야......정말 이상하군, 이런 빌어먹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모두 시커군! 죽음이 숨어있는 무덤과 같은 시커먼 심연의 동굴.

으흐!......추워! 벽난로 굴뚝에서 부는 것처럼 바람이 부는군.

여기가 영혼들을 부르는 바로 그 곳인 거야! 으스스해, 빌어먹을......등골이 오싹해....

 

광대가 내미는 대사들이 가슴을 파고 들었다.

평생을 무대에서 보낸 68살의 늙은 배우

기념 공연을 끝내고 후배들이 권하는 술에 취해 잠이 들고

깨어나보니 45년을 함께 한 분장실

그러나 그곳은 낯선 곳이었다.

죽음이 숨어있는 무덤과 같은 시커먼 동굴이었다.

 

어느 날 문득 낯설게 다가오는 내 삶들.

그리고 죽음.

익숙해지려 기를 써보지만

늘 낯선 삶의 무게들.

추웠다.

등골이 오싹했다.

콜록 콜록

눌러 두었던 기침이 새어 나왔다.

콜록 콜록

배우가 내 기침을 따라 했다.

콜록 콜록

내가 배우의 기침을 따라 했다.

 

도대체 아무도 없는 거야?

조명도 음악도 있으니 저 안에 누가 있긴 있는 건가?

 

 

 

있다.

분장실에서 누가 나왔다.

늙은 배우는 그를 니끼뚜쉬까라 불렀다.

늙은 배우는 주연이라도 했지 평생 단역만 해 온 가난한 배우였다.

잘 곳이 없어 극단 관계자 몰래 분장실에서 기거하고 있는.

 

 

 

 

집에 가기 싫어, 싫어! 집에는 나 혼자야.

아무도 없어, 니끼뚜쉬까, 친척도 없고, 마누라도 없고, 자식도 없고......

들판에 부는 바람처럼 나 혼자야.

내가 죽으면, 아무도 나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거야.

혼자 있는 게 두려워. 나를 따뜻하게 해주고, 애정을 주고, 술 취한 나를 침대에 눕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난 누구에게 속한 걸까? 난 누구에게 필요하지? 누가 날 사랑하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니끼뚜쉬까! 

 

그래 저건 상훈이야. 늙은 배우 상훈이.

아니 나야. 나의 이야기야.

친척도 없고,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고...

같이 있다 한들 늘 혼자인 나, 우리 모두.

들판에 부는 바람처럼 난 혼자야, 혼자라구!

 

 늙은 배우는 니끼뚜쉬까를 붙들고 하소연을 했다.

재능과 풍부한 감성과 우아함이 있던 젊은 시절

자기를 사랑해주던 여자.

그러나 그의 무대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떠나버린 여자. 

니끼뚜쉬까는 이렇게 외쳐 주었다.

관객이 당신을 사랑하잖아요! 바실리 바실리치! 

 

 

그들은 재능과 열정이 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갔다.

리어왕이 되고

햄릿

오델로가 되었다.

외치고, 튀어오르고

피리를 불고...

 

그러나 니끼뚜쉬까는 피리를 불 줄 몰랐다.

주연 한 번 못해 본 단역 배우는 주저앉아

참아왔던 열등감과 소외감, 비참함, 서운함...

을 터트리고 말았다.

들여다 보면 서글프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서럽지 않은 늙음이 어디 있겠는가?

 

늙은 배우가 니끼뚜쉬까에게 말했다.

 

예술이 있고 재능이 있는 곳에는

늙는 것도, 고독함도, 병도 없고

죽음조차 절반 밖에 없는 거야.

 

늙은 배우는 자기 자신에게

아니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외쳤다.

 

  

 공연을 마치고

어딘가에서 기어나온 세 명의 스텝과 더불어

건배를 했다.

"늙은 배우의 재능과 열정을 위하여!!!"

 늙은 배우는 따뜻이 웃었다.

오늘 그대를 사랑하는 일당 백의 관객과 함께 했으니.

나도 웃었다. 나만을 위해 공연해 주는 큰 사랑이 있었기에.

 

그렇게 재능과 열정과 감성을 간직한 아름다운 무대가 늙은 배우와 평생 함께 하기를 빌며 

하나의 관객은 전화 버튼을 누른다.

 

"깊은 철학과 우리네 인생이 깃든 뭉클한 연극이 있어요~~~ 보러 오세요~~~~"

 

 

 

 

 

출처 : 세이레극단/세이레아트센터/세이레어린이극장
글쓴이 : 김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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