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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보다 젯밥-오성찬

제사보다 잿밥

입력날짜 : 2006. 05.15



 잘 준비된 연극이나 공연 한 편 관람하고 나오면서 자기 속의 영혼이 말끔하게 씻겨지고, 새롭게 변한 것을 느끼는 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경험일까? 혼신의 정열을 다하여 그리거나 조각한 전시회를 감상하고 나올 때도 그 여운은 오래 울린다. 그러나 최근에도 공연이나 전시를 꽤 관람하는 편인데도 그런 체험을 아주 드물게 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한 동안 기억될만한 공연이나 전시를 만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것은 그래도 좋게 봐줘서 하는 말이고, 좀 심하게 표현하자면 솔직히 아무렇게나 짜 맞춘 공연이나 전시를 구경하고 나오면서 속으로 모진 다짐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이런 연극이나 전시를 보러 오나 보라!”

 이런 다짐 역시 나 혼자만 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요 근래 내가 봤던 공연이나 전시 중에는 건성으로 준비한, 그야말로 1회성 공연물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경우 여러 해 전서부터 몇 차례나 리바이벌 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제나, 저제나, 그래도 뭔가 보여주는 게 있겠지 하고 고개를 늘이고 끝까지 관람을 했는데 마침내 아무 충족감도 주지 못하고 연극이 끝났을 때 그 속았다는 느낌과, 허비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심한 실망감과 허탈은 참을 수가 없다. 전시의 경우도 사설 갤러리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심지어 문예회관 전시실 같은 공인된 장소에서도 아무 때나 아마추어 수준의 전시를 하는 데는 아연실색을 하게 된다.

 허긴 제주와 같이 공연에 대한 열정 있는 지도자도, 배우도, 스텝도, 어떤 여건도 갖춰져 있지 못한 상황에서 좋은 작품 만들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그러나 따지자면 제주에 공연예술이 발을 붙이고 나서 꽤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 작품성에 세월의 이끼를 덧입지 못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전시의 경우도 마찬가지.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는데, 되레 후퇴를 하고 있는 인상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의심까지 하는 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건 아니나 어떤 공연이나 전시를 보고는 이건 “제사보다 잿밥에 눈이 어두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서 진흥기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물론 이 기금은 부진한 국내 문화예술계에 일단 촉진제가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기금으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 중 첫째 폐단이 문화예술계 자체의 자립심을 분질러버린 점이다. 모르는 새 지원을 받지 않고는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풍조가 우리 속에 만연해 버렸다. 이것은 큰 병폐다.

 은연중에 우리 문화예술계는 스스로의 내면에 무성하게 자라버린 잡초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농사를 지어보면 어린 곡식 때는 곡식과 잡초가 함께 자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자란 후에는 잡초를 제거해주지 않으면 제대로의 수확을 할 수가 없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속의 잡초를 꾸준히 솎아내고 정제된 알곡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언제 문화예술계의 위상이 요즘처럼 떨어진 경우가 있었던가. 그리고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닌 우리 예술계 스스로에게 원인과 책임이 있다. 이 점을 뼈아프게 깨닫고, 만회를 위해서 힘껏 노력할 일이다. 그래서 모든 예술이 본래의 위상을 되찾고,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 가야 한다.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