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자와코예술촌의 극단 와라비좌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일본연수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다자와코예술촌에서 주식회사 와라비좌의 이사이자 극단 와라비좌의 대표인 고레나가 미키오(是永幹夫) 씨를 만났다. 이 날의 만남은 한일 양국의 공연제작자들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이었다.
아쉬운 이별, 2달 뒤인 5월 28일, 더 많은 한국의 연극인을 만나기 위해 고레나가씨가 한국을 방문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월례모임인 '월요제작포럼'에서 56년의 역사를 지닌 극단 와라비좌와 오픈한 지 11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다자와코예술촌의 운영비법을 공개한다. 현장을 찾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극단 와라비좌와 다자와코예술촌에 대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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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태어난 극단, 와라비좌
전후 폐허가 된 도시 도쿄에서 3명의 남자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살아남기 위해서, 삶의 터전을 재건하기 위해 잿더미를 뒤지던 사람들은 그들의 노래에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극단 와라비좌의 시작이었다.
1951년 정식으로 '극단 와라비좌'가 탄생하고 1년 후인 52년,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도호쿠 지방의 아키타현 센보쿠시로 옮겨온다. 도호쿠 지방은 예로부터 일본 민요와 무용의 보물창고로 불리던 곳이다. 극단 와라비좌는 일본인으로서의 DNA를 확인하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을 목표로 과감히 도시를 버리고 시골을 택한 것이었다.
센보쿠시 교외의 한 농가 근처에 버려진 창고를 빌려 극단 와라비좌의 깃발을 올렸다. 극단 와라비좌 단원들은 농민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그들로부터 지방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와 춤을 배웠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극단 와라비좌가 공연하는 작품은 순수한 창작극으로 뮤지컬이 주를 이룬다. 그 지역의 노래와 이야기로 스토리를 만들고 전통무용과 음악으로 무대를 채운다. 민족문화예술연구소를 설립해 아키타 지역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전해져 내려오는 민요와 무용을 수집, 연구, 보관하고 있다. 또한 DAF(Digital Art Factory)를 만들어 전통 민요와 무용의 디지털화를 통해 대중적인 보급 및 보존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렇게 50여 년의 세월을 보낸 극단 와라비좌는 연간 1200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단원 150명과 3개의 전용극장을 비롯, 전국 각지를 도는 순회공연, 학교를 찾아가는 학교공연이 이뤄낸 성과다. 극단 시키에 이어 일본 내 관객동원 수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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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마을의 극단이 도쿄나 오사카와 같은 대도시를 근거지로 삼고 활동 중인 도호 뮤지컬이나 다카라즈카가 극단을 제쳤다는 게 놀라울 정도다.
1996년에는 다자와코예술촌이라는 복합문화단지를 만들어 극단의 거점으로 삼게 된다.
다자와코예술촌은 극단 와라비좌의 전용극장 2개와 단원들의 숙소, 온천호텔과 맥주공장 등을 포함한 시설이다. 다자와코예술촌의 성공을 바탕으로 에히메현 마쯔야마시에 새로운 극장을 오픈하며 승승장구 중이다. |
▲ 최근 시코쿠 마츠야마시에 와라비좌전용극장인 봇짱 극장 을 개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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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와라비좌의 거점, 아키타현 다자와코예술촌
올해로 개장 11년째를 맞는 다자와코예술촌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술촌 내에 있는 극단 와라비좌의 전용극장인 와라비 극장(700석)만 해도 일본 전역에서 살고 있는 극단 와라비좌 팬들의 작은 정성이 모여 지어진 극장이다. 극장 의자 뒷면에는 기부금을 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온천호텔 유포포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대중탕으로 만들어졌던 것이 몇 년의 공사를 거쳐 객실동까지 갖춘 온천호텔로 재탄생했으니까 말이다. 다자와코예술촌이 만들어지면서 극단 와라비좌는 주식회사 와라비좌의 극단 사업부문으로 다시 태어났다. 주식회사 형태를 띠면서 전문경영이 가능해졌고 다자와코예술촌 사업으로 극단 운영비를 마련하기 용이해졌다.
다자와코예술촌은 와라비 극장, 온천호텔 유포포, 다자와코 맥주, 모리바야시 공예관, 디지털 아트 팩토리, 화석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직원은 약 400명으로 이 중 정사원 수는 250명이다. 전 직원이 다자와코예술촌이 위치한 다자와코 마을의 주민들이다. 연간 방문객 수가 25만 명에 이르고 연수입이 25억 엔(약 230억 원)에 달한다. 3만 5천 명이 살고 있는 센보쿠시에서 가장 높은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다.
25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원동력은 바로 극단 와라비좌에서 나온다. 1년 내내 대극장(700석)과 소극장(200석)에 공연을 올리고 전국 순회공연을 통해 극단 와라비좌 작품의 매력을 전파해 팬들을 끌어모은다. 지역 색이 살아 있는, 일본인의 DNA가 선명한 극단 와라비좌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으로 25만 명의 사람들을 인구 3만 5천명에 지나지 않은 작은 도시 센보쿠시로 이끄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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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자와코 맥주 |
또 30년 전부터 학교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됐던 드림워크 사업을 중심으로 일본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수학여행단을 유치하는 데 콘텐츠를 제공하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극단 와라비좌다.
결국 다자와코예술촌과 극단 와라비좌는 윈윈전략을 통하여 관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본 내에서 제일가는 복합문화시설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 지역과의 공생, 그리고 글로컬(Glocal)의 시대로
극단 와라비좌가 아키타현으로 들어왔을 때에 그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그곳에서 살던 농민들이었다. 와라비좌 단원들에게 살 곳을 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작품 창작의 소재가 되는 노래와 춤을 가르쳐주었던 것도 지역 주민들이었다. 극단 와라비좌는 전통예능의 기능 보유자인 노(能)의 창시자 제아미(世阿彌)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극장이 되어야 축복받는다"라는 말을 이념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극단 와라비좌가 가장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역과의 공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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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와코예술촌을 움직이는 400명의 직원을 지역 주민들로 고용하고 매년 60여 개의 중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을 오면 반드시 지역 농가에서 농가 체험을 하도록 프로그램을 짰다. 다자와코 마을 인근의 700여 채의 농가가 이 프로그램에 참가 중이다. |
지금은 온천호텔이 된 유포포 역시 처음에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만든 목욕탕이었다. 목욕탕을 이용하러 온 주민들이 바로 옆에 있는 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러다가 여가를 연극관람으로 보내게 되고 다자와코 맥주에서 맥주 한 잔 하며 여유롭게 주말을 보내는 식이 된 것이다. 다자와코예술촌은 지역주민들의 문화사랑방이다.
눈이 많이 오는 아키타 지방에서 겨울은 길고 긴 겨울방학이다. 다자와코예술촌에서는 2월 한 달 동안 와라비 극장을 지역주민들에게 오픈해 지역문화축제를 열도록 지원하고 있다. 아카펠라 그룹에서 댄스 동호회까지 지역주민들의 동호회가 이날만큼은 마음껏 와라비 극장 무대를 밟아볼 수 있다.
다자와코예술촌은 철저하게 지역문화의 멋과 맛을 살린 곳이다. 아키타 지역의 향토요리, 전통예술, 맛있는 쌀과 쌀로 빚은 지역 명주, 다자와코 오리지널 맥주 등, 무엇이든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자원을 활용하고 있다.
다자와코예술촌은 'Think Locally, Act Globally'라는 말을 운영의 키워드로 삼고 있다. 이는 주식회사 와라비좌의 운영 이념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아키타'를 넘어서 '아키타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사업 전개와 동아시아의 국제교류센터로서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을 시작했다. 앞으로 다가올 50년을 제2의 창업기로 진일보하는 다자와코예술촌과 극단 와라비좌의 미래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