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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여신, 설문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설문대는 거신(巨神)이었다.

설문대가 어느 날 바다 한 가운데에다 제주섬을 만들기로 하고 치마폭에 흙을 가득 퍼 나르기 시작했다. 치마에 난 구멍들 사이로 흙부스러기가 조금씩 끊임없이 떨어졌다.
  드디어 커다란 산이 하나 완성되었다. 어찌나 높은지 은하수를 만질 수 있을 만큼 높다고 해서 ‘한라산’이라 이름 지어졌다. 치마 구멍 사이로 떨어져 쌓인 흙들은 ‘오름’들이 되었다. 한라산이 너무 높다고 생각한 설문대는 봉우리를 꺾어 던져버렸다. 봉우리는 안덕면 사계리로 날아가 ‘산방산’이 되었다.

설문대는 어찌나 컸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는 제주시 앞바다에 있는 관탈섬에 걸쳐졌다. 빨래를 할 때는 팔은 한라산 꼭대기를 집고 서서 관탈섬에 빨래를 놓아 발로 문질러 빨았다. 그런가 하면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왼쪽 다리는 관탈섬에 놓고, 오른쪽 다리는 마라도에 놓고, 성산일출봉 분화구를 바구니로 삼고 우도를 빨랫돌로 삼아 빨래를 하기도 했다.

우도는 원래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 어느 날 설문대가 한쪽 발은 성산읍 오조리에 있는 식산봉에 디디고, 한쪽 발은 일출봉에 디디고 앉아 오줌을 쌌다. 그 오줌줄기가 어찌나 세었던지 땅 조각이 하나 떨어져 나갔는데, 그것이 바로 우도가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성산과 우도 사이의 물살이 유난히 세고 빠르다고 한다.
  설문대는 너무 커서 제대로 된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주백성들에게 속옷 한 벌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겠다고 했다. 설문대의 속옷 한 벌을 만들려면 명주 1백통이 필요했다. 제주백성들은 최선을 다해 명주를 모았지만 99통밖에 되지 않았다. 한 통이 모자라 설문대의 속옷을 만들어주지 못했고, 설문대도 다리를 좀 놓아가 가다가 중단해버렸다. 조천리, 신촌리의 앞바다에 있는 ‘여’라고 부르는 바위줄기들이 그 흔적이라고 한다.

설문대는 그 큰 키가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제주도 안에 있는 깊은 물들 가운데 자신의 키보다 깊은 것이 있나 시험해 보기로 했다.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소’가 깊다는 말을 듣고 들어서보니 물이 발등에 닿았다. 서귀포시 서홍리에 있는 ‘홍리물’이 깊다고 해서 들어서보니 무릎까지 닿았다. 그렇게 물이란 물은 다 들어서보며 깊이를 시험하고 다녔다.

어느 날 한라산에 있는 ‘물장오리’에 들어섰다가 영영 나오지 못하고 말았다. 물장오리는 밑이 터져 한없이 깊은 물이었던 것이다. 설문대는 그렇게 물장오리에 빠져 죽고 말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현용준(1996). 「제주의 신화」.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의 전설」.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도 민담」. 제주문화
고대경(1997). 「신들의 고향」. 중명

<자문위원>
현용준(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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