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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락궁이와 사라도령의 해후

어머니에게만 작별인사를 하고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섰다.
먼 문 밖으로 나섰는데, 장자집의 천리를 달린다는 날쌘 개인 천리둥이가 짖어대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할락궁이는 얼른 메밀범벅 한 덩이를 천리둥이에게 던져주고, 그것을 먹는 사이에 천리를 뛰어갔다. 이젠 됐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만리둥이가 쫓아왔다. 또 한 덩이를 내던져 먹는 틈에 만리를 뛰어갔다.

그렇게 수만리를 지났을까. 한참 가다보니 무릎에 차는 물이 있어 지나가고, 또 한참 가다보니 잔등이에 차는 물이 있어 넘어갔다. 또 한참 가다보니 목까지 차는 물이 있어 그 물을 넘어가니 서천꽃밭이 보였다.

서천꽃밭 입구에는 커다란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는데 그 아래에 맑은 연못이 있었다. 할락궁이는 수양버들 맨 윗가지에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서천꽃밭은 고요했다. 조금 있으니까 궁녀들이 삼삼오오 물동이를 이고 입구 쪽으로 걸어왔다. 꽃밭에 줄 물을 뜨러 연못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할락궁이는 얼른 손가락을 깨물어 붉은 피 몇 방울을 연못에 떨어뜨렸다. 부정해져 버린 연못물은 궁녀들이 물을 뜨려고 하자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궁녀들이 꽃감관에게 보고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총각이 수양버드나무 윗가지에 앉아서 연못에 풍운조화를 주고 있습니다.”

꽃감관이 할락궁이를 불렀다.

“너는 귀신이냐, 사람이냐?”
“저는 신산만산할락궁이라는 사람입니다.”

꽃감관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증거가 될 물건을 가졌느냐?”

꽃감관은 할락궁이가 내놓은 얼레빗 반쪽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맞춰보았다.
 
“내 자식이 분명하구나. 나를 찾아올 때 무릎 차는 물이 없더냐?”
“있었습니다.”
“그것은 네 어머니가 첫 매를 맞을 때 흘린 눈물이다.”

잔등이에 찬 물은 두 번째 매질 때 흘린 눈물이고, 목에 찬 물은 세 번째 매질에 죽어가며 흘린 핏물이라 했다. 할락궁이가 떠나온 후 어머니는 장자에게 고문을 받고 죽은 것이다.

아버지는 할락궁이를 데리고 꽃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멸망악심꽃, 환생꽃, 웃음웃을꽃, 싸움싸울꽃 등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따주었다.

“이 꽃들을 가지고 도로 내려가서 복수를 하고 어머니를 살려내 모시고 오너라.”

할락궁이가 장자집으로 도로 들어가자 자현장자가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일가친족들을 다 불러주시오.”

장자집 일가친족들이 다 모여들자, 할락궁이는 웃음웃을꽃을 뿌렸다. 모두 뒹굴어가며 웃음판이 벌어졌다. 다음엔 싸움싸울꽃을 뿌렸다. 패싸움판이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멸망악심꽃을 뿌리자 모두 죽어갔다.

셋째 딸이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면 우리 어머니 주검 던져버린 데를 알려다오.”
어머니의 주검은 너무나 비참했다. 머리는 끊어 푸른 대밭에 던져졌고, 잔등이는 끊어 검은 대밭에 던져졌고, 무릎은 끊어 푸른 띠밭에 던져져 있었다. 어머니는 없고 뼈만 살그랑하게 남아 있었다. 할락궁이는 어머니의 뼈를 차례대로 모아 놓고 환생꽃을 뿌렸다.
  “아이고, 봄잠이라 오래도 잤다.”

어머니가 살아나 머리를 긁으며 일어났다.
할락궁이는 자현장자의 딸을 죽여 어머니가 죽었던 자리에 묻어 버렸다. 그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서천꽃밭으로 가 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나중에 할락궁이는 아버지의 꽃감관 자리를 물려받고 잘 살았다.

<참고문헌>
현용준(1996). 「제주의 신화」.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의 전설」.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도 민담」. 제주문화
고대경(1997). 「신들의 고향」. 중명

<자문위원>
현용준(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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