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만 작별인사를 하고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섰다. 먼 문 밖으로 나섰는데, 장자집의 천리를 달린다는 날쌘 개인 천리둥이가 짖어대며 쫓아오기 시작했다. 할락궁이는 얼른 메밀범벅 한 덩이를 천리둥이에게 던져주고, 그것을 먹는 사이에 천리를 뛰어갔다. 이젠 됐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만리둥이가 쫓아왔다. 또 한 덩이를 내던져 먹는 틈에 만리를 뛰어갔다. 그렇게 수만리를 지났을까. 한참 가다보니 무릎에 차는 물이 있어 지나가고, 또 한참 가다보니 잔등이에 차는 물이 있어 넘어갔다. 또 한참 가다보니 목까지 차는 물이 있어 그 물을 넘어가니 서천꽃밭이 보였다. 서천꽃밭 입구에는 커다란 수양버들이 늘어져 있는데 그 아래에 맑은 연못이 있었다. 할락궁이는 수양버들 맨 윗가지에 올라가 주변을 살폈다. 서천꽃밭은 고요했다. 조금 있으니까 궁녀들이 삼삼오오 물동이를 이고 입구 쪽으로 걸어왔다. 꽃밭에 줄 물을 뜨러 연못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할락궁이는 얼른 손가락을 깨물어 붉은 피 몇 방울을 연못에 떨어뜨렸다. 부정해져 버린 연못물은 궁녀들이 물을 뜨려고 하자 순식간에 말라버렸다. 궁녀들이 꽃감관에게 보고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총각이 수양버드나무 윗가지에 앉아서 연못에 풍운조화를 주고 있습니다.” 꽃감관이 할락궁이를 불렀다. “너는 귀신이냐, 사람이냐?” “저는 신산만산할락궁이라는 사람입니다.” 꽃감관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증거가 될 물건을 가졌느냐?” 꽃감관은 할락궁이가 내놓은 얼레빗 반쪽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맞춰보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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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현용준(1996). 「제주의 신화」.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의 전설」.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도 민담」. 제주문화 고대경(1997). 「신들의 고향」. 중명 <자문위원> 현용준(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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