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김진국과 임진국이 한 마을에 살았다. 김진국은 몹시 가난했고 임진국은 부자였다. 둘 다 자식이 없어 고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영검 좋은 동관음사에 들어가 백일불공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불공을 드리러 갔다. 백일 정성을 마치고 나니 과연 태기가 있어 김진국은 아들을 낳고 임진국은 딸을 낳았다. 김진국 아들은 사라도령이라 이름 짓고, 임진국 딸은 원강암이라 이름 지었다. 두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김진국과 임진국이 일찍이 ‘구덕혼사(아기구덕에 눕혀 키우는 어린아이 때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혼시키는 일)’로 사돈을 맺은 터라, 두 아이는 자라 부부가 되었다. 원강암이에게 태기가 있어 배가 항아리만큼 무거워졌을 무렵, 옥황상제로부터 사라도령에게 서천꽃밭의 꽃감관을 살러 오라는 전갈이 내려왔다. 누구의 명인데 거절을 하리. 사라도령은 곧 채비를 하고 부인에게 말했다. “내 꽃감관을 살고 올 테니 부모님을 모시고 잘 있으시오.” 그러나 원강암이가 죽으나 사나 같이 따라 가겠다고 졸라대는 바람에 부부가 함께 서천꽃밭을 향해 길을 떠났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원강암이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연약한 여자의 몸에 아이를 밴 배는 항아리만 하고, 발은 콩구슬처럼 부르터 걸을 수가 없었다. 가다가 날이 저물면 억새포기 속에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 다시 아픈 다리를 이끌며 얼마나 얼마나 걸었을까. 하루는 어떤 언덕 밑에서 팽나무를 의지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삼경이 지나자 어디에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낭군님, 저 닭은 어디서 우는 닭입니까?” “자현 들어 자현장자(子賢長者), 만년 들어 만년장자(萬年長者) 집의 닭 우는 소리라오.” 원강암이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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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현용준(1996). 「제주의 신화」.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의 전설」.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도 민담」. 제주문화 고대경(1997). 「신들의 고향」. 중명 <자문위원> 현용준(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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