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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도령과 원강암이

옛날 옛적 김진국과 임진국이 한 마을에 살았다. 김진국은 몹시 가난했고 임진국은 부자였다. 둘 다 자식이 없어 고심하고 있었다.

어느 날, 영검 좋은 동관음사에 들어가 백일불공을 드리면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함께 불공을 드리러 갔다. 백일 정성을 마치고 나니 과연 태기가 있어 김진국은 아들을 낳고 임진국은 딸을 낳았다.

김진국 아들은 사라도령이라 이름 짓고, 임진국 딸은 원강암이라 이름 지었다. 두 아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다.

김진국과 임진국이 일찍이 ‘구덕혼사(아기구덕에 눕혀 키우는 어린아이 때 부모의 의사에 따라 결혼시키는 일)’로 사돈을 맺은 터라, 두 아이는 자라 부부가 되었다.

원강암이에게 태기가 있어 배가 항아리만큼 무거워졌을 무렵, 옥황상제로부터 사라도령에게 서천꽃밭의 꽃감관을 살러 오라는 전갈이 내려왔다. 누구의 명인데 거절을 하리. 사라도령은 곧 채비를 하고 부인에게 말했다.

“내 꽃감관을 살고 올 테니 부모님을 모시고 잘 있으시오.”

그러나 원강암이가 죽으나 사나 같이 따라 가겠다고 졸라대는 바람에 부부가 함께 서천꽃밭을 향해 길을 떠났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원강암이의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연약한 여자의 몸에 아이를 밴 배는 항아리만 하고, 발은 콩구슬처럼 부르터 걸을 수가 없었다.

가다가 날이 저물면 억새포기 속에서 밤을 보내고 날이 밝으면 다시 아픈 다리를 이끌며 얼마나 얼마나 걸었을까. 하루는 어떤 언덕 밑에서 팽나무를 의지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삼경이 지나자 어디에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낭군님, 저 닭은 어디서 우는 닭입니까?”
“자현 들어 자현장자(子賢長者), 만년 들어 만년장자(萬年長者) 집의 닭 우는 소리라오.”

원강암이는 눈물을 흘리며 남편에게 말했다.
 
“낭군님, 나는 이제 더 걸을 수가 없습니다. 나를 저 자현장자 집에다 종으로 팔아 노잣돈 삼아 가세요.”

사라도령은 기가 막혔다. 부부는 서로 얼싸안고 한참을 울었다.
울음을 그친 부부는 자현장자 집으로 가 먼 문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종이나 사십시오.”

자현장자가 딸들을 불러 물었다.

“저 종 어떨 것 같으냐?”

원강암이의 미모를 시기한 큰딸과 둘째딸은 집안 망하게 한다고 사지 말라 했다. 셋째 딸이 말했다.

“아버지, 우리 집안을 이롭게 할 종인지 해롭게 할 종인지 모르니까 그 종 사 두십시오.”

원강암이는 삼백 냥, 뱃속의 아이는 백 냥으로 흥정이 이루어졌다. 자현장자는 사라도령을 사랑방으로 불러들여 밥상을 차려 내어오고, 원강암이는 부엌에 들여보내 식은 밥에 물을 말아 주게 했다. 밥상을 받은 사라도령은 수저를 든 채 잠시 눈물을 흘리다가 자현장자에게 말했다.

“이 마을 풍습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우리 마을 풍습은 서로 이별할 때는 맞상을 차려주는 법입니다.”

그제야 맞상이 차려져 나와 부부는 밥상 앞에 마주 앉았다. 원강암이는 남편에게 뱃속에 있는 아이 이름이라도 지어주고 가라고 했다.

“아들을 낳으면 ‘신산만산할락궁이’라 이름 짓고, 딸을 낳으면 ‘할락댁이’라 이름 지으시오.”
사라도령은 가지고 있던 얼레빗을 반으로 꺾어 한쪽을 부인에게 주며 다시 만날 날을 굳게 기약했다.

<참고문헌>
현용준(1996). 「제주의 신화」.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의 전설」. 서문문고
현용준(1996). 「제주도 민담」. 제주문화
고대경(1997). 「신들의 고향」. 중명

<자문위원>
현용준(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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