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옛날, 명주를 짜면서 살아가던 어떤 여인이 젊은 나이에 죽어 저승에 갔다. 여인은 저승에 가서도 명주 짜는 일을 맡아 했다. 그런데 이승에서는 명주를 아주 곱게 잘 짰는데, 저승에서 짜는 명주는 곱지 않았다. 검은 점이 군데군데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생각한 염라대왕이 부하를 시켜 몰래 숨어 명주 짜는 것을 살펴보라고 했다. 부하가 살펴보니, 여인이 명주를 짜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게 아닌가! 그 눈물이 명주에 묻어 더러워지곤 했던 것이다.
염라대왕은 여인을 불러 물었다. “너는 어찌해서 명주를 짜면서 항상 눈물을 흘리느냐?” “이승에 젊은 남편과 다섯 살 난 딸, 두 살 난 아들을 두고 왔습니다. 아이들도 걱정되고, 젊은 남편이 그 어린 것들을 데리고 고생하는 걸 생각하니 눈물이 저절로 납니다.”
염라대왕은 여인이 측은해졌다. |
“네 말을 들으니 가엾구나. 그럼 내일부터 자시(밤12시)가 되거든 모든 사람이 잠든 이 밤과 저 밤 사이에 이승에 가서 어린 자식에게 젖도 먹이고 집안일을 돌보거라. 그러나 새날이 들기 전에 꼭 다시 저승으로 와야 한다.”
여인은 너무 기뻤다. 다음 날 밤부터 이 밤과 저 밤 사이에 이승으로 가서 두 살 난 아들에게 젖을 먹이고, 다섯 살 난 딸의 머리를 곱게 빗어주고, 남편이 입을 옷을 꿰매주고는 부지런히 저승으로 돌아와 명주를 짰다. 그 뒤부터는 눈물을 흘리지 않아 명주가 고와졌다. 이런 생활이 얼마간 계속되었다.
한편, 이승에 있는 여인의 시어머니는 아들의 살림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아침에 가보면 손녀 머리가 곱게 단장되어 있고, 손자도 젖살이 뽀얗게 올라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확실히 전과 다른 것이다. 하루는 손녀보고 물었다.
“누가 네 머리를 빗겨주지?” “이 밤과 저 밤 사이에 엄마가 와서 내 머리를 빗겨주고, 동생에겐 젖을 줘요.”
손녀는 순진하게 비밀을 얘기해버렸다. 그날 밤 아들 집에 몰래 숨어 며느리가 와서 하는 것을 지켜본 시어머니는 다시는 저승에 못 가게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며느리의 신발을 숨겨버렸다. 시간이 되어 돌아가려고 나온 며느리는 신발이 없어 당황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저승에 가지 말고 아이들을 키워라.”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가야한다 가지 마라,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그만 날이 밝아버렸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보고 골방에 있는 항아리 속에 꼼짝 말고 숨어있으라고 했다. |
날이 밝아도 여인이 저승으로 돌아오지 않자 화가 난 염라대왕은 차사를 시켜 여인을 잡아들이라고 했다. 차사가 이승으로 와 여인의 혼을 빼가지고 가버렸고, 다시는 이승에 오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사람은 죽으면 다시 이승에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염라대왕은 젊은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왔기 때문에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여겨 늙은이부터 차례차례 저승으로 잡아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까마귀보고 “늙은 사람부터 차례차례 저승으로 오라”는 전달을 하라고 했다.
까마귀는 편지를 날개에 접히고 이승으로 날아오다가 어떤 밭에 말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저기 가서 죽은 말고기나 뜯어먹고 가자.”
까마귀는 말 죽은 밭에 들렀다가 그만 편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편지의 내용도 까먹어 버리고, 그렇다고 편지를 전달하지 않을 수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까마귀.
“에이, 아무렇게나 전달하자. 젊은이도 죽어라, 까옥. 늙은이도 죽어라 까옥. 어린아이도 죽어라, 까옥” 이렇게 되는 대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은 나이 차례대로 죽지 않게 된 것이라고 한다. | |